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2차 금융구조조정에 필요한 공적자금 투입 규모가 주요한 이슈였는데, 그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업의 자금난으로 발생될 기업부도를 방지하는 것이 더 큰 경제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급기야 6월 19일 정부는 돈을 풀어 기업과 종금사를 지원하는 단기 비상대책을 발표하였습니다.
중견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비상대책이 발표되기까지 새한그룹 워크아웃, 현대 단기 유동성 부족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금융기관간 거대한 자금 이동에서도 뭔가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실례로 금융기관의 수신 추이를 보면, 4월 한달 동안 은행계정에서는 13조 9천 2백억원이 증가된 반면, 금전신탁에서 5조 6천억 원이 감소하였습니다. 또한 제2금융권에서도 투신사, 종금사의 수신은 각각 5조 8천억원, 3천억원이 감소하였고, 증권사 고객예탁금, 뮤추얼펀드의 수신은 각각 6천8백억원, 7천8억원 감소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제2금융권 및 금전신탁에서 인출된 자금이 대부분 은행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로 금융시장 전체로 보면 금융기관의 수신 자금은 오히려 증가하여 자금이 더 풍부해진 셈인데, 왜 신용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신용경색과 자금의 단기화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용경색과 자금난
신용경색은 주어진 이자율 수준에서 대출자금의 공급이 감소하여 발생하게 됩니다. 6월의 기업 자금난은 단기자금의 신용경색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융기관은 왜 단기 대출자금을 감소시키는 것일까요?
기업 단기자금의 주요 공급원은 은행의 단기대출과 종금사의 기업어음(CP)입니다. 먼저 은행이 단기대출을 축소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제2차 금융구조조정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은행의 합병, 우량은행과 비우량 은행에 대한 차별대우입니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바로 우량은행이 되는 것입니다. 정부의 그 판단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은행의 잠재적 부실 규모이고 또 하나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준수 여부입니다.
은행이 잠재적 부실규모를 줄이려면,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않거나 미래 현금흐름이 좋지 않아 그 신용평가등급이 투기등급, 즉 트리플 B(BBB)급 이하로 분류된 기업에 대해 신규대출 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투자부적격 등급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도 해주지 않고 그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나 CP에 투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재적 부실규모를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개선시키는 것입니다. 은행의 대출 및 투자자산은 위험도에 따라 서로 다른 가중치를 적용받게 되는데, 투자부적격 등급이 낮을수록 그 가중치는 증가하게 되므로 자기자본비율도 하락하게 욉니다.
은행의 대출이 이렇게 소극적인 이면에는 장기저축성 예금 보다 단기저축성예금이 급격히 증가하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통화개관표에서 장단기저축성예금 규모를 정리해 본 <표 1>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표 1>의 자료에 따르면, 단기자산을 건전하게 운영하는 것이 은행의 경쟁력을 결정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표 1> 장단기 예금 추이 (단위: %) : 생략
잠재적 부실규모,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따라 흡수 합병되거나 비우량은행으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은행의 자산 운영자는 객관적인 기업의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각 기업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에서 단기로 자산을 운영하는 담당자는 투자나 대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성과에 따라 성과급과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단기의 대출 및 투자를 결정하는 담당자에게 기업의 미래 상환능력이나 국가경제의 미래를 고려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기업 단기자금의 또 다른 원천인 종금사의 기업어음 투자는 어떤 상황인가요? 금융구조조정의 제1순위였던 종금사는 외환위기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어음 시장에서는 주도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대우 사태로 인해 건전한 종금사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나라종금은 영업정지 상태이고, 6월 8일 정부는 한국종금을 부실징후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2828억원이 지원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종금사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은 더 이상 제2금융권에 공적자금 투입이 없다는 기존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종금사는 그 자체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는데만 급급한 상황이며,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금융기관으로서의 그 고유의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됐습니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움직인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자금 잉여주체에서 자금 부족 주체로 자금을 중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처한 상황을 보면, 금융기관으로서는 실물경제 상황을 고려할 여지가 없습니다. 금융과 실물이 별개로 움직이는 현상을 두고, 금융기관의 현재 영업형태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융기관이 처한 환경을 보면, 투자부적격 업체에 대한 자금난을 금융기관의 영업기준으로 판단하여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중견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 금융기관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여 금융기관 스스로 영업기준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은행은 기업에 단기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영업성과는 BIS 비율 및 잠재적 부실 규모로 판정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행의 합병, 우량은행의 지정을 연기하고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 대신 시장경제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기업 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의 단기대출이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정부는 은행의 단기자금 운영에 BIS 자기자본비율에 의한 은행의 합병 및 우량은행 지정이라는 족쇄를 씌워 놓고 있습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도 새로운 재무구조에 적응하는데 익숙치 않고, 금융기관도 새로운 실물경제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걸려서 해결될 문제는 정부 주도의 개혁 보다 시장경제원리에 맡겨두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둘째, 투자부적격 업체에 자금을 지원하고도 책임을 떠 안지 않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정책의 최고 책임자는 정부 조직법 상에 국민경제안정과 성장을 책임지고 있어, 투자부적격 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고 책임자 한 사람의 책임이므로,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문책을 받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금의 단기화 현상과 비정상적인 장단기 금리 격차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7월 중순 이후 장기금리가 단기금리 보다 4 - 7% 높은 경제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격차가 통상 2%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장단기 금리격차는 선진국의 2배가 넘습니다. 이러한 큰 폭의 금리격차가 약 1년 동안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기불일치로 인해 그것이 오히려 신용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위험이 전혀 지적되고 있지 않습니다.(이종욱, "장단기 금리격차, 무엇이 문제인가? 자유기업원, Briefing Papers, 2000년 6월2일 참조)
장기금리가 단기금리 보다 훨씬 더 높으므로, 그로 인해 기업조달자금의 만기가 단기화 되어 있는 것도 신용위기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미 현대 사태를 통해 그런 위험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500억 정도의 결제자금 부족으로 발생된 현대 그룹의 단기 유동성 부족 문제는 기업의 차입자금 단기화에 따른 만기불일치에서 발생된 것입니다.
그러나 큰 폭의 장단기 금리 격차로 인해 발생될 신용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감소세를 보였던 기업어음 순발행(즉, 기업어음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차감한 것)이 올해 1월에는 4조 5천억원 증가세로 돌아선데 이어, 2월 2조 1천억원, 3월 2조 2천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행의 대출 축소로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통상 만기가 3개월 이하의 CP중 15일 미만인 CP가 6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경기가 불투명한데가 7월로 다가온 투신사의 시가 평가제 실시,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은행간 합병 등으로 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더 개선시키기 위해, 대출을 감소시킬 것입니다. 더구나 외국 투자가 및 국제기구는 지속적인 기업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이므로,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은 더 소극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신용경색이 지속되면 차입자금의 단기화로 만기불일치에 직면한 기업은 현대그룹과 같은 단기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게 될 것입니다.
단기자금에 의존도가 높은 다른 기업도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이는 기업의 연쇄부도 뿐만 아니라 은행위기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은행위기와 외환위기는 서로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고, 은행위기에서 외환위기로 가는 인과성이 더 크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담당자는 기업구조개혁 및 금융개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당분간 그런 격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용경색과 장단기 금리격차
경기변동을 예측하는데 있어, 신용경색과 높은 장단기 금리격차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장단기 금리차가 큰 경우 1 - 2년 후에는 경제성장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3 - 5년 후에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장단기 금리격차는 선진국의 2배 이상이므로, 중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경기는 호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신용경색은 향후의 경제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예측케 해 줍니다.
과연 어느 경제지표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겠습니까? 최근 한국은행 총재는 하반기 경제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금리인상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전국경제인 연합회, 상공회의소, 한국은행도 기업의 체감경기를 조사하여, BSI지수는 2000년 2/4분기에 최고였다가 3/4 분기에는 급격히 하락하여 99년 3/4분기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똑 같은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신용경색이 높은 금리격차 보다 더 올바른 경기 예측 지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책적 제언
현재 기업의 자금난이 신용경색 때문이라고 이해한다면, 정부는 장단기 정책을 조화롭게 실행해야 합니다. 먼저 은행의 합병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여 관치금융이란 비난을 받기 보다 시장에 의한 자율적 합병을 추진하도록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은행간 경쟁이 촉진될 수 있는 시장구조를 조성하여, 우량은행이 시장을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은행은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대출이나 투자를 결정할 것이므로, 기업의 자금난도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중단기적으로는 단기금리를 인하하고, 장기금리를 단기금리 보다 더 많이 내림으로써 금리격차를 축소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업도 단기자금 보다 장기자금 차입에 관심을 가지고, 은행도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기업의 장기대출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셋째, 투자부적격 신용평가 등급을 받은 기업도 회사채 및 CP를 발행할 수 있도록 소위 정크본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현재 중견기업의 신용경색은 이들의 신용등급에 맞는 금융시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였고, 시장이 없으니 정부가 국가경제를 고려하여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자산관리공사(KAMCO)가 정크본드 시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기관이 시장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또 하나의 복마전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중견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비상대책이 발표되기까지 새한그룹 워크아웃, 현대 단기 유동성 부족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금융기관간 거대한 자금 이동에서도 뭔가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실례로 금융기관의 수신 추이를 보면, 4월 한달 동안 은행계정에서는 13조 9천 2백억원이 증가된 반면, 금전신탁에서 5조 6천억 원이 감소하였습니다. 또한 제2금융권에서도 투신사, 종금사의 수신은 각각 5조 8천억원, 3천억원이 감소하였고, 증권사 고객예탁금, 뮤추얼펀드의 수신은 각각 6천8백억원, 7천8억원 감소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제2금융권 및 금전신탁에서 인출된 자금이 대부분 은행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로 금융시장 전체로 보면 금융기관의 수신 자금은 오히려 증가하여 자금이 더 풍부해진 셈인데, 왜 신용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신용경색과 자금의 단기화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용경색과 자금난
신용경색은 주어진 이자율 수준에서 대출자금의 공급이 감소하여 발생하게 됩니다. 6월의 기업 자금난은 단기자금의 신용경색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융기관은 왜 단기 대출자금을 감소시키는 것일까요?
기업 단기자금의 주요 공급원은 은행의 단기대출과 종금사의 기업어음(CP)입니다. 먼저 은행이 단기대출을 축소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제2차 금융구조조정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은행의 합병, 우량은행과 비우량 은행에 대한 차별대우입니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바로 우량은행이 되는 것입니다. 정부의 그 판단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은행의 잠재적 부실 규모이고 또 하나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준수 여부입니다.
은행이 잠재적 부실규모를 줄이려면,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않거나 미래 현금흐름이 좋지 않아 그 신용평가등급이 투기등급, 즉 트리플 B(BBB)급 이하로 분류된 기업에 대해 신규대출 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투자부적격 등급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도 해주지 않고 그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나 CP에 투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재적 부실규모를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개선시키는 것입니다. 은행의 대출 및 투자자산은 위험도에 따라 서로 다른 가중치를 적용받게 되는데, 투자부적격 등급이 낮을수록 그 가중치는 증가하게 되므로 자기자본비율도 하락하게 욉니다.
은행의 대출이 이렇게 소극적인 이면에는 장기저축성 예금 보다 단기저축성예금이 급격히 증가하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통화개관표에서 장단기저축성예금 규모를 정리해 본 <표 1>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표 1>의 자료에 따르면, 단기자산을 건전하게 운영하는 것이 은행의 경쟁력을 결정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표 1> 장단기 예금 추이 (단위: %) : 생략
잠재적 부실규모,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따라 흡수 합병되거나 비우량은행으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은행의 자산 운영자는 객관적인 기업의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각 기업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에서 단기로 자산을 운영하는 담당자는 투자나 대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성과에 따라 성과급과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단기의 대출 및 투자를 결정하는 담당자에게 기업의 미래 상환능력이나 국가경제의 미래를 고려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기업 단기자금의 또 다른 원천인 종금사의 기업어음 투자는 어떤 상황인가요? 금융구조조정의 제1순위였던 종금사는 외환위기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어음 시장에서는 주도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대우 사태로 인해 건전한 종금사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나라종금은 영업정지 상태이고, 6월 8일 정부는 한국종금을 부실징후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2828억원이 지원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종금사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은 더 이상 제2금융권에 공적자금 투입이 없다는 기존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종금사는 그 자체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는데만 급급한 상황이며,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금융기관으로서의 그 고유의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됐습니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움직인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자금 잉여주체에서 자금 부족 주체로 자금을 중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처한 상황을 보면, 금융기관으로서는 실물경제 상황을 고려할 여지가 없습니다. 금융과 실물이 별개로 움직이는 현상을 두고, 금융기관의 현재 영업형태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융기관이 처한 환경을 보면, 투자부적격 업체에 대한 자금난을 금융기관의 영업기준으로 판단하여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중견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 금융기관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여 금융기관 스스로 영업기준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은행은 기업에 단기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영업성과는 BIS 비율 및 잠재적 부실 규모로 판정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행의 합병, 우량은행의 지정을 연기하고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 대신 시장경제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기업 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의 단기대출이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정부는 은행의 단기자금 운영에 BIS 자기자본비율에 의한 은행의 합병 및 우량은행 지정이라는 족쇄를 씌워 놓고 있습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도 새로운 재무구조에 적응하는데 익숙치 않고, 금융기관도 새로운 실물경제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걸려서 해결될 문제는 정부 주도의 개혁 보다 시장경제원리에 맡겨두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둘째, 투자부적격 업체에 자금을 지원하고도 책임을 떠 안지 않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정책의 최고 책임자는 정부 조직법 상에 국민경제안정과 성장을 책임지고 있어, 투자부적격 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고 책임자 한 사람의 책임이므로,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문책을 받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금의 단기화 현상과 비정상적인 장단기 금리 격차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7월 중순 이후 장기금리가 단기금리 보다 4 - 7% 높은 경제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격차가 통상 2%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장단기 금리격차는 선진국의 2배가 넘습니다. 이러한 큰 폭의 금리격차가 약 1년 동안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기불일치로 인해 그것이 오히려 신용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위험이 전혀 지적되고 있지 않습니다.(이종욱, "장단기 금리격차, 무엇이 문제인가? 자유기업원, Briefing Papers, 2000년 6월2일 참조)
장기금리가 단기금리 보다 훨씬 더 높으므로, 그로 인해 기업조달자금의 만기가 단기화 되어 있는 것도 신용위기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미 현대 사태를 통해 그런 위험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500억 정도의 결제자금 부족으로 발생된 현대 그룹의 단기 유동성 부족 문제는 기업의 차입자금 단기화에 따른 만기불일치에서 발생된 것입니다.
그러나 큰 폭의 장단기 금리 격차로 인해 발생될 신용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감소세를 보였던 기업어음 순발행(즉, 기업어음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차감한 것)이 올해 1월에는 4조 5천억원 증가세로 돌아선데 이어, 2월 2조 1천억원, 3월 2조 2천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행의 대출 축소로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통상 만기가 3개월 이하의 CP중 15일 미만인 CP가 6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경기가 불투명한데가 7월로 다가온 투신사의 시가 평가제 실시,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은행간 합병 등으로 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더 개선시키기 위해, 대출을 감소시킬 것입니다. 더구나 외국 투자가 및 국제기구는 지속적인 기업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이므로,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은 더 소극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신용경색이 지속되면 차입자금의 단기화로 만기불일치에 직면한 기업은 현대그룹과 같은 단기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게 될 것입니다.
단기자금에 의존도가 높은 다른 기업도 이런 상황을 겪게 되면, 이는 기업의 연쇄부도 뿐만 아니라 은행위기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은행위기와 외환위기는 서로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고, 은행위기에서 외환위기로 가는 인과성이 더 크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담당자는 기업구조개혁 및 금융개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당분간 그런 격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용경색과 장단기 금리격차
경기변동을 예측하는데 있어, 신용경색과 높은 장단기 금리격차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장단기 금리차가 큰 경우 1 - 2년 후에는 경제성장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3 - 5년 후에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장단기 금리격차는 선진국의 2배 이상이므로, 중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경기는 호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신용경색은 향후의 경제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예측케 해 줍니다.
과연 어느 경제지표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겠습니까? 최근 한국은행 총재는 하반기 경제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금리인상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전국경제인 연합회, 상공회의소, 한국은행도 기업의 체감경기를 조사하여, BSI지수는 2000년 2/4분기에 최고였다가 3/4 분기에는 급격히 하락하여 99년 3/4분기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똑 같은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신용경색이 높은 금리격차 보다 더 올바른 경기 예측 지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책적 제언
현재 기업의 자금난이 신용경색 때문이라고 이해한다면, 정부는 장단기 정책을 조화롭게 실행해야 합니다. 먼저 은행의 합병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여 관치금융이란 비난을 받기 보다 시장에 의한 자율적 합병을 추진하도록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은행간 경쟁이 촉진될 수 있는 시장구조를 조성하여, 우량은행이 시장을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은행은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대출이나 투자를 결정할 것이므로, 기업의 자금난도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중단기적으로는 단기금리를 인하하고, 장기금리를 단기금리 보다 더 많이 내림으로써 금리격차를 축소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업도 단기자금 보다 장기자금 차입에 관심을 가지고, 은행도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기업의 장기대출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셋째, 투자부적격 신용평가 등급을 받은 기업도 회사채 및 CP를 발행할 수 있도록 소위 정크본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현재 중견기업의 신용경색은 이들의 신용등급에 맞는 금융시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였고, 시장이 없으니 정부가 국가경제를 고려하여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자산관리공사(KAMCO)가 정크본드 시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기관이 시장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또 하나의 복마전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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