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생한 의사들의 집단 폐업과 금융 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금융 노조 파업과 의사 폐업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법과 사회 기강의 붕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집단 행동은 외환 위기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서 이제 자기 집단의 이익을 챙겨야겠다는 잘못된 사회 풍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권리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는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공동체 또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에는 노동 조합, 기업가 단체, 농민 단체를 비롯하여 관료 집단이나 지역 주민도 포함됩니다.
정부는 불법적 집단 행동과 집단 이기주의가 발생할 때마다 법을 엄중하게 집행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별로 큰 효과가 없는듯 합니다. 노동계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만일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총파업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정계와 재계를 압박합니다. 의사들은 '국민 건강'과 '의료계의 생존권'을 외치면서 집단 행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국의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행위'라는 사회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폐업을 강행하였습니다. 결국 정부가 양보하고 말았습니다. 집단 이기주의에 기초한 탐욕과 의심, 갈등과 상호 비방은 인간 사이의 신뢰를 위협하고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암세포와 같다고 정죄하는 것으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집단 이기주의는 불가피한 현상인가
이러한 집단 행동은 자기 책임의 원칙을 외면하고 모럴 헤저드를 초래할 뿐 아니라, 경쟁의 원칙이 지배해야 하는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은행 노조는 은행 경영의 실패 때문에 생긴 부실을 정부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과 은행 경영 부실의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집단 행동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공통의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집단으로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집단 이기주의에 기초한 극단적인 집단 행동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집단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있습니다. 집단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초한 집단 행동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라는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폭력을 수반하는 극단적인 수단에 의해 전체주의 사회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러 갈등은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작은 싸움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싸움을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그 싸움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곧 계층 사이의 갈등과 해결은 민주 사회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강건한 활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혼란스러움과 다양함은 민주주의만의 장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 이기주의와 집단 이타주의
그런데 꼼꼼히 따져보면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는 '공동체 의식'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덕목이 아니라 '공동체에 충성하는 것'을 칭송해 온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행동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공동으로 대처하고, 국가의 위기가 사라진 지금 정부의 개혁 정책으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위기가 왔기 때문에 일치 단결하여 이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유 사회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덕목이 필요합니다.
집단 이기주의와 집단 이타주의(집단 이타주의는 외부 집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이타주의를 말합니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집단 이타성은 동물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소규모 부족 사회는 종족 내부에 강한 이타성이 존재하지만 이웃 종족에 대해서는 적대적입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그 집단에 대한 이타성은 그 집단 내부에서는 칭송의 대상이 됩니다.
어느 집단이나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단 이타성과 집단 이기성을 동시에 지녀야 합니다. 집단 이타성이 집단 생존의 본질이라면, 이타성을 상실하면 그 집단은 소멸합니다. 집단 이타성은 외부의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집단 이타성이 발휘되려면 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대하여 배타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집단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 내부에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강한 이타심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그 집단을 위해 강한 이타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공격이 강화될수록 내부 결속이 강건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의사들의 집단 폐업이나 은행 파업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무리한 개혁정책이 집단 이기주의의 원인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정부 개혁 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정부가 교육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서로 경쟁해야 할 학교와 교육 종사자들이 똘똘 뭉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정부의 금융 개혁 정책은 금융 종사자들을 뭉치게 하였습니다.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의사 집단과 약사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준법 정신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사 집단과 금융 노조원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롯데 호텔 노조와 국민 건강 보험 공단 노조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차별적인 정부의 대응 방식은 힘에 기초한 집단 행동을 계속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특정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공익을 실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공익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길은 법을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자신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집단을 향해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 세우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문제를 엄폐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업의 원인은 정부와 여당의 일관성 없는 개혁 정책과 당리당략 때문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는 정부가 모든 집단 사이의 이익을 정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집단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고, 긍정적인 측면만 있고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은 음과 양, 선과 악을 동시에 갖기 마련입니다. 의약 분업이 국민을 위해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이성적인 차원에서 볼 때 명백한 모순처럼 보일지라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그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약 분업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마치 의약 분업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 선이고 반대는 악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의료 전반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효과적인 원리로 시장을 인정한다면 의료 부분에도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제도는 국가의 독점 체제이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은 전혀 없습니다. 왜 의료 수가를 정부가 공공요금처럼 지도하거나 통제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교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였듯이 현재와 같은 의료 평준화는 의료 혜택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좋은 의료 혜택을 받겠다는 사람들을 외국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자신의 능력으로 건강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하면 최소한의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의료 전반을 독점하여, 서로 경쟁해야 할 의사와 의사, 병원과 병원을 공동 운명체로 만들어 줌으로써 집단 이타심과 집단 이기심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의료 부분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의료 보험을 강제 보험으로 묶어두고, 모든 병원을 공동 운명체로 결속시킬 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들의 단결을 유도하지 말고 분리시켜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정부는 집단 이기심을 부추겨 집단 이타심을 일어나게 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서로 경쟁해야 할 개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권리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는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공동체 또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에는 노동 조합, 기업가 단체, 농민 단체를 비롯하여 관료 집단이나 지역 주민도 포함됩니다.
정부는 불법적 집단 행동과 집단 이기주의가 발생할 때마다 법을 엄중하게 집행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별로 큰 효과가 없는듯 합니다. 노동계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만일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총파업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정계와 재계를 압박합니다. 의사들은 '국민 건강'과 '의료계의 생존권'을 외치면서 집단 행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국의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행위'라는 사회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폐업을 강행하였습니다. 결국 정부가 양보하고 말았습니다. 집단 이기주의에 기초한 탐욕과 의심, 갈등과 상호 비방은 인간 사이의 신뢰를 위협하고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암세포와 같다고 정죄하는 것으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집단 이기주의는 불가피한 현상인가
이러한 집단 행동은 자기 책임의 원칙을 외면하고 모럴 헤저드를 초래할 뿐 아니라, 경쟁의 원칙이 지배해야 하는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은행 노조는 은행 경영의 실패 때문에 생긴 부실을 정부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과 은행 경영 부실의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집단 행동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공통의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집단으로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집단 이기주의에 기초한 극단적인 집단 행동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집단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있습니다. 집단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초한 집단 행동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라는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폭력을 수반하는 극단적인 수단에 의해 전체주의 사회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러 갈등은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작은 싸움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싸움을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그 싸움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곧 계층 사이의 갈등과 해결은 민주 사회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강건한 활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혼란스러움과 다양함은 민주주의만의 장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 이기주의와 집단 이타주의
그런데 꼼꼼히 따져보면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는 '공동체 의식'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덕목이 아니라 '공동체에 충성하는 것'을 칭송해 온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행동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공동으로 대처하고, 국가의 위기가 사라진 지금 정부의 개혁 정책으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위기가 왔기 때문에 일치 단결하여 이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유 사회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덕목이 필요합니다.
집단 이기주의와 집단 이타주의(집단 이타주의는 외부 집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이타주의를 말합니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집단 이타성은 동물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소규모 부족 사회는 종족 내부에 강한 이타성이 존재하지만 이웃 종족에 대해서는 적대적입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그 집단에 대한 이타성은 그 집단 내부에서는 칭송의 대상이 됩니다.
어느 집단이나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단 이타성과 집단 이기성을 동시에 지녀야 합니다. 집단 이타성이 집단 생존의 본질이라면, 이타성을 상실하면 그 집단은 소멸합니다. 집단 이타성은 외부의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집단 이타성이 발휘되려면 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대하여 배타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집단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 내부에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강한 이타심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그 집단을 위해 강한 이타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공격이 강화될수록 내부 결속이 강건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의사들의 집단 폐업이나 은행 파업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무리한 개혁정책이 집단 이기주의의 원인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정부 개혁 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정부가 교육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서로 경쟁해야 할 학교와 교육 종사자들이 똘똘 뭉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정부의 금융 개혁 정책은 금융 종사자들을 뭉치게 하였습니다. 정부의 의료 정책은 의사 집단과 약사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준법 정신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의사 집단과 금융 노조원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롯데 호텔 노조와 국민 건강 보험 공단 노조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차별적인 정부의 대응 방식은 힘에 기초한 집단 행동을 계속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특정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공익을 실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공익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길은 법을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자신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집단을 향해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 세우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문제를 엄폐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파업의 원인은 정부와 여당의 일관성 없는 개혁 정책과 당리당략 때문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는 정부가 모든 집단 사이의 이익을 정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집단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고, 긍정적인 측면만 있고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은 음과 양, 선과 악을 동시에 갖기 마련입니다. 의약 분업이 국민을 위해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이성적인 차원에서 볼 때 명백한 모순처럼 보일지라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그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약 분업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마치 의약 분업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 선이고 반대는 악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의료 전반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효과적인 원리로 시장을 인정한다면 의료 부분에도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제도는 국가의 독점 체제이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은 전혀 없습니다. 왜 의료 수가를 정부가 공공요금처럼 지도하거나 통제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교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였듯이 현재와 같은 의료 평준화는 의료 혜택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좋은 의료 혜택을 받겠다는 사람들을 외국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자신의 능력으로 건강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하면 최소한의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의료 전반을 독점하여, 서로 경쟁해야 할 의사와 의사, 병원과 병원을 공동 운명체로 만들어 줌으로써 집단 이타심과 집단 이기심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의료 부분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의료 보험을 강제 보험으로 묶어두고, 모든 병원을 공동 운명체로 결속시킬 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들의 단결을 유도하지 말고 분리시켜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정부는 집단 이기심을 부추겨 집단 이타심을 일어나게 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서로 경쟁해야 할 개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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