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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대통령 중심 경제 운영의 폐해

김대중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경제를 `선두에 서서 직 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역시 시장에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7일 주식시장이 대통령의 경제 직접챙기기 발언에 따른 시장안정 기 대심리로 단숨에 800선을 회복한 것이다.

대통령 발언의 위력은 얼마 전 민주노총 총파업 때도 목격된 바 있다.

민노총이 주5일 근무제 관철을 내세우고 파업을 강행한다고 하자 아 무도 풀지 못했던 이 문제가 대통령의 주5일 근무제 전향적 검토 발언 이후 눈 녹듯 풀려버린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아직 선진 국이라고 명함을 내밀기에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중 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가 경제발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4.13 총선과 남북정상회담 준비로 인해 경제의 각종현안이 뒷전 으로 밀려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가 비로서 국정운영의 포커스로 복귀했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의 발언이 있어야만 시장이 반응하고 관료가 움직 이는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바람직하지 만은 않은 일이다고 말 할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은 속성상 정치적 의사결정자이지 경제우선의 의사결정자 는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전국민의 대표인 만큼 대통령에게는 국민 개개인의 후생과 복리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통령에게 경제논리만을 내세워 의사결정할 것을 요청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경제논리만을 강요할 수 없 다는 논리는 역으로 대통령에게 경제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권이 집중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속성상 의사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에 비경제 적인 정치적 배려가 개입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를 경제만으로 풀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축소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같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면서도 미국에서는 경 제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고 연방준 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있도록 시스템이 고안돼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주가라는 말은 있 어도 빌 클린턴 주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 는 이미 여러 곳에서 현실로 나타나 있다.

주5일 근무제의 입법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과연 주5일 근무제가 경 제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제시되지 않은 채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노동부의 태도가 돌변해 버렸다.

개혁이 시급한 정부 공기업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4대 개혁과제 중 가장 진전이 없는 부분이 공기 업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공공기관의 장에 대한 인사가 경영전 문가가 아닌 국회의원 낙천자, 낙선자 일색이다.

이것을 정권후반기의 권력누수현상을 막기 위한 `측근전진배치' 전략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배치된 측근이 노조청문회를 받아들이고 청문회에서 "내가 비리수사를 중단시켰다"고 말하는 지경 에 이르면 공기업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노사문제와 관련한 부분에서 정치논리가 지나치게 개입되는 것 은 경제의 구조개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은행합 병이 예정돼 있지만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합병이 라면 합병을 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불문가지이다.

합병의 과정에서 소수정예의 인력으로 은행이 인력을 재배치 하지 않 는다면 공적자금을 아무리 투입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할 것 이다.

또 하나 대통령에게 경제의사 결정권한이 집중돼 있는 것의 폐단은 경제관료의 리더십과 자율성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현대사태를 앞두고 경제팀의 불화설이 불거졌던 것은 대통령 일극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 정책결정과정에도 그 원인이 있다.

분명 경제정책결정의 수장은 재경부장관이라는데 다른 곳에서 다른 말이 줄곧 새 나오다 보니 불화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 한 현상이 왜 발생했을까. 경제팀 멤버 중 그 누구도 재경부장관이 최 고의사결정권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재경부 장관에 모든 정보를 집중해서 최선의 대안을 도출하기 보다는 재경부장관을 자신과 동급의 경제팀 일원으로만 생각하고 언제든지 재 경부장관의 결정이 대통령을 움직이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체제에서라면 그린스펀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재정경제부 장 관을 하더라도 흔들리고 욕먹고 결국은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경제부총리 역할까지 하면서 재경부장관은 과거 국장 급 수준으로 국장들은 과거 사무관수준으로 경제관료의 위상과 수준이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우리는 매우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율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책임을 묻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 델을 시급히 경제정책 결정과정에도 도입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