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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2의 금융위기 재연될 것인가?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식시장, 채권시장, 그리고 외환시장이 그러합니다. 주가의 등락폭이 커지며 또한 거래량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채금리가 10%대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채권거래가 대폭 줄어들고 있습니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간주되던 1,120원대를 상회하였습니다. 국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한 요인들로 미국 금리의 추가 인상에 따른 증시침체 가능성, 무역흑자의 감소, 제2의 금융구조조정에 불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사태를 보고 금융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2년 6개월 전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수급의 원리에 따라 환율이 조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업의 부도발생건수가 증가하였고 또한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늘어남에 따라 추가 부실을 우려해 자금유통이 제대로 되질 않아 채권시장이 마비되었습니다. 이러한 악재가 오랫동안 방치된 결과로 IMF위기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이 현재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금융위기의 주요 특징

금융위기란 각국별로 또한 시대별로 제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일반화하기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으로 기업의 부도건수가 대폭 증가하여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상을 들 수 있으며, 두 번째 특징으로 경제의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발생해 금융중개기능이 파괴되는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기업의 부도발생은 과다 차입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는 경기변동에 따라 호경기와 불경기를 겪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호 경기시 적극적인 투자를 집행하게 되는 데 투자에 대한 자금조달을 내부자금조달보다는 외부차입에 의존하게 됩니다. 과다차입은 고속 성장을 원하는 기업일수록 선호하게 되는 데 호경기가 지속되는 경우 높은 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게 되면 투자 수익률이 저조해 기업이 이자비용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 신용위험프리미엄이 대폭 증가되어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오히려 상승하게 됩니다. 결국 수익성이 나빠진 상태에서 자금조달비용의 상승은 과다차입 기업들을 부도로 몰아가게 됩니다.

한편 기업의 도산은 대량 실업을 초래하게 되고 투자 및 소비활동이 감소하게 되어 실물경제활동이 급속도로 위축됩니다. 근로소득에 의존하는 근로자들은 실업을 우려해 소비지출을 대폭 줄이고자 할 것입니다. 또한 기업은 이러한 소비활동위축을 우려해 투자를 줄이게 됩니다. 결국 민간 수요의 위축으로 실물경제활동이 대폭 감소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로 98년 우리나라 경제가 -5.7%로 곤두박질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한편 기업에 대출한 금융기관들의 경우 부실채권의 발생으로 손실이 초래되어 자본금이 대폭 줄어들 게 됩니다. 이미 취약한 자본금구조를 갖고 있는 은행시스템은 자기자본금 규제(BIS)로 인해 정상적인 신용제공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됩니다. 신용경색의 격화는 신용상태가 우량한 차입자들도 불필요한 도산을 초래하게 됩니다.

또한 부실과다에 따른 부실금융기관이 발생해 금융기관의 도산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금융기관의 도산은 금융시스템의 지불 및 결제시스템의 기능을 저해시켜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금융위기는 실물경제가 붕괴되거나 금융시스템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을 말한다.

자본시장의 불안

과연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에 직면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위에서 제시한 조건에 어느 정도 충족되는 가를 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징후를 실물경제의 파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단연코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활동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GDP성장률로 평가할 때 금년도 경제는 8%이상의 고도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도 1/4분기 경제성장률이 12%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경기불황보다는 경기과열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 더구나 기업의 도산 건수는 IMF발생이후 하향 안정화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실업률은 4.1%의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편 금융위기의 징후를 금융시스템의 기능 측면에서 보면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전 단계인 금융불안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용경색의 징후가 채권시장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안감이 은행권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잔존하고 있습니다. 이미 과다부실에 따른 은행권은 위험에 대비해 볼 때 취약한 자본을 갖고 있어 이러한 불똥이 튀게되는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금융불황에 놓일 우려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부실채권매입에 대한 추가적인 공적자금 투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데 이는 아직도 금융기관이 과다부실채권으로 허덕이고 있음을 반영하는 사례라 고 볼 수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점

지난 97년 금융위기발생이후 금융시스템의 기능이 점진적으로 회복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98년 10월까지 금융권은 대출을 극히 꺼려했지만 그 이후 중소기업 및 가계중심으로 빠른 신용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99년 7월 대우사태의 발생으로 투신권에서 환매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본시장의 불안이 점차적으로 가중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우사태 발생이후 7%내외에서 안정세를 유지해왔던 회사채금리가 2%상승한 9%대로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이는 채권자입장에서 기업부도우려에 따른 일종의 신용 위험프리미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새한 그룹의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작업)신청과 지방 종금사의 영업정지 발표는 취약한 회사채시장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봅니다. 기업어음 및 회사채시장의 위축으로 우량기업마저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금융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건전한 자본금을 확충해야 하는 데 증시의 침체로 자본조달이 용이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더욱이 국내 증시의 대외 여건은 미국의 고금리정책의 여파로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따라서 증시를 통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자본 확충전략은 당분간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치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볼 때 국내 금융권은 과다 부실채권 및 과소 자본상황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 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들은 회복의 초기 국면에 금융시스템이 이러한 문제점에 직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복 초기국면의 경우 금융시스템은 취약하기 때문에 약간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을 금융위기의 재연가능성이 있다기보다는 IMF위기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봅니다. 즉 우리 금융시스템은 몇 번의 대수술을 해야만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수행한다고 봅니다. 99년 가을 대규모 공적 자금투입이라는 단 한 번의 대 수술을 했다고 해서 금융시스템에 잔존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소되었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향후 수 차례에 걸쳐 2단계 또는 3단계 필요하다면 그 이상의 금융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금융위기 재연 가능성

성공적인 금융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정책비전과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명확한 중장기 비젼이 없는 상황하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정책처방을 구사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시장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전략과 해결책이 집행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 현재 금융시장의 취약성은 금융위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적 자금 투입 및 금융구조조정이라는 조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불안이 금융위기로 전환될 것인가의 여부는 향후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책적 대응과정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발표한 정부의 금융구조조정 계획은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 시장의 반응입니다. 예컨대 은행주가는 액면가격을 훨씬 밑돌고 있는 데 이는 정부의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현재의 금융불안은 금융위기라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이유는 실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실업률의 저하와 높은 경제성장활동수준을 감안할 때 금융위기의 재연가능성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금융기능의 악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금융위기 재연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가 되지만 현재로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채권시장에서 부분적 신용경색현상, 증시의 침체지속, 금융권의 취약한 자본금구조하에서 부실채권 처리능력 약화 등 금융불안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금융불안이 금융위기로 전환될 것인가는 향후 금융 및 기업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구조조정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