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금융개혁의 빛과 그림자

정부가 "금융구조조정을 연내에 마무 리짓기 위해" 50조원(순 40조)의 공적자 금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런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서 금융구 조조정이 마무리(?)된다고 해도,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금융위기가 해 소될 수 있을까요?


대원군과 금융위기

금융위기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해소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조선조 말기의 대원군이 시도했던 개혁이 성공했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대원군만큼 당시의 부패상을 아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고 그이만큼 조선조를 중흥시키려는 열의가 있었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나 그는 개혁에 실패 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결국 그는 민비와 권력 투쟁만 해 온 노욕(老慾) 많은 정객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원군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사상이 유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좁은 세계에서 유교적인 해법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데에 그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연내에 금융구조조정의 마무리를 통해 금융위기를 해소하려 하고 있지만, 그 해법이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정신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이번에 투입되는 자금도 밑 빠진 독에 물을 '한 번' 더 붓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왜 IMF 위기라는 것을 맞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일본을 본받아 개발금융체재에 충실하였고 그 덕분에 경제도 비교적 빨리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 체제 아래에서는 재경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또 우리에게 대외개방이 강요되면서 개발금융체재 아래에서 유용하게 쓰이던 방식에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경부는 자기들의 권한과 영향력이 줄어들까 두려워, 이 방식을 고수하려 하였고 정치인들도 재경부의 이런 자세에, 부분적으로는 재경부에 매수되고 또 부분적으로는 자기들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에 동조하였습니다.

IMF 위기가 오기 전까지 특히 문민정부 때 금융을 자유화하고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어 활기 있는 금융산업을 만들자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지만, 재경부는 묘한 방법으로 이를 피해갔습니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문민정부가 '금융실명제'를 갑자기 실시하여 사유재산제도 그리고 개인적 富에 대해 치명적 타격을 가하여, 정부는 아무 때나 법에 의하지 않고도 이를 빼앗을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경향이 생겼으며, 우리가 IMF 직전에 경험했던 급격한 국제수지 악화도 상당 분은 이에 연유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970년대 영국에서 집권 노동당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중과하려고 노력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것을 연상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재벌과 관치금융

이렇게 되어서 우리나라는 IMF 위기를 당하게 되었으나 이로부터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IMF 위기의 주범으로 당시 재경부 장관과 대통령 경제수석이 국회청문회와 재판까지 받았지만, 그 후 일이 진행된 것을 보면 IMF 위기의 주범은 민간부문 특히 재벌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시민단체들도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되는 일입니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된 주된 이유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잘했는데, 재벌기업들의 재무구조가 나쁜데 더해서 이들이 지나치게 차입 의존적인 경영을 해서 우리 경제에 IMF 위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따르면 IMF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민간부문 특히 재벌기업들의 개혁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따라서 지금까지 일을 잘해 온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 개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다시 담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결론은 국민의 정부안에 사회주의적 개혁 즉 '상대적 박탈감'의 치유가 우리나라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이 많은 사실에 의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모든 개혁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고, 이것은 일부 은행의 강제퇴출조치부터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64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그 윤곽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들은 완전히 생동력을 잃어버리고, 금감원이 지시하는 자금관리나 현금출납을 처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빅 딜'이 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부가 그렇게 자랑했던 기업구조조정도 오히려 기업부실과 정치부패를 조장한 꼴이 되었음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IMF 이전부터 활용해 왔던 관치금융적 또는 관치경제적 요소가 IMF 이전보다 더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금융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위험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최근에야 겨우 그 위험을 인정하고 서둘러서 5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로서 분명해진 것은, 이런 관치적 수법은 IMF 이전이나 그 이후나 문제를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해결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두 번이나 실패한 수법을 정부는 이번에 또 다시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종합기획실?

50조원의 공적자금을 더 투입해서 금융기관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 금융기관들은 더욱 더 생동력을 잃을 것이므로, 이제는 이들을 금융기관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들을 퇴출시키는 지침과 모형을 금감원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나라에는 금감원이라는 종합기획실 밑에서 여러 금융기관들은 영업부서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하나의 금융기관이 되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관치금융 또는 관치경제의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 기금을 동원하여 증시안정까지 도모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증시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연 기금에서 중요한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하도록 하여, 정부는 기업의 주인노릇까지 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관치경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장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활동을 하는 금융기관과 기업은 모두 정부의 허수아비가 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치경제는 이래서 두 번이나 실패한 것이며, 사회주의 경제는 소련, 동유럽 그리고 북한의 예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치경제보다 더 심한 규제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50조 원을 투입하여 금융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문제의 씨앗을 그대로 둔 채, 쓰레기 위에 눈이 덮이듯이,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모르지만, 눈이 녹으면 문제는 다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 중에는 IMF 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원인을 사후관리를 소홀히 한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적자금 관리 위원회 같은 것을 두어 감독을 철저히 하자는 주장이 기세를 올리고 있으나, 사전이나 사후에 감독을 잘하는 것으로 경제를 번영시킬 수 있다면 공산권이 지금처럼 망해 있지 않을 것이고 우리도 IMF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융개혁과 경영권

경제가 번창하게 하려면 기업가들이 창조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하지만, 실패한 기업가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사기꾼으로 보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기꾼 같은 기업가 지망생이 많아야 경제의 발전 잠재력은 높아지는 것이며, 그런 사기꾼 같은 지망생 중에서 진짜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지망생을 골라내는 일을 하는 것이 금융산업입니다. 이런 선정작업이 잘되면 경제도 성장하고 금융산업도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감시와 처벌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감옥이나 공산주의 국가가 더 경제적으로 번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정으로 금융개혁을 성공시켜서 금융위기가 다시 오지 않도록 할 생각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관치경제적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 시작은 금융기관들에게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어 이들이 생동력과 창조력이 있는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작업은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즉 각 금융기관별로 공적자금의 투입규모를 정한 다음, 그 공적자금을 최소로 받고 나머지는 자기자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원매자에게 그 금융기관의 운영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A 은행에 100억 원의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원매자 중에서 공적 자금을 가장 적은 금액 예컨대 5억 원을 받겠다는 원매자에게 그 은행의 경영권을 인계하되, 투입해야 할 공적자금과 5억과의 차이는 원매자가 부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은행을 안전하게 경영할 수 있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는, 나머지를 시중에서 매입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이 때 그 원매자는 국적이나 재벌 여부와 같은 기준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금융산업에 투입될 수 있는 경영능력의 풀(pool)을 넓히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입찰의 경쟁강도를 높여 투입해야 할 공적자금의 규모를 최소로 줄이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또 다른 부수적 효과는 금융산업의 주가를 높여서 개인투자가들을 주식시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점입니다.


금융개혁의 성공을 위해

이렇게 금융기관들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건전경영 등 시장중심적 감독을 제외한 모든 금융규제를 완전히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일정한 시한을 두고 영국의 '빅 뱅'처럼 일시에 자유화하되,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금융시장은 미국이나 영국의 그것에 근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자유화 조치가 필요하지만, 최소한도 신용보증기금 제도의 폐지를 빼놓아서는 안 됩니다. 신용보증제도는 요즘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정치인의 부패를 조장할 뿐, 도움이 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은행을 대신하여 신용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은행들의 신용분석능력을 무디게 만드는 나쁜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은행에게 일정 비율의 출연금을 납부케 하여 은행들의 대출 수익률을 낮추는 문제까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금까지 금융감독위원회가 해 온 일에 비추어 볼 때, 시장 중심적 감독을 위해서는 금감위의 권한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 통합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금융기관들에게 아무리 '주인'을 찾아준다고 하여도 이들은 거대한 괴물 앞에 있는 사슴처럼 아무런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는 금융기관들이 이윤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금융산업으로 자금이 몰려 들어오기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유화 조치로 금융기관들이 마음대로 창조력을 발휘해서 영업을 하고 각자의 영업적 판단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면, 금융기관들의 주가는 저절로 올라갈 것이므로 정부가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문제도 짧은 시일 안에 해결될 것입니다. 이처럼 관치경제적 수법을 탈피하고 자유주의적 해법을 쓰지 않고는, 공적자금을 아무리 투입해도 금융개혁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제2의 금융위기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