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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금융감독원의 역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검사·감독해야 할 금감원의 간부가 비리에 연루됨으로써 그 자체의 건전성에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고 있다.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물론 금감원의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직의 개편방향을 논하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정부기관의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검사와 감독을 행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운영을 정기적으로 감시함으로써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여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부기관의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효과 있는 제도가 아니다. 정부감독기관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융기관의 검사감독을 정확하게 하는 경향이 많지 않다. 검사자나 감독자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처럼 이윤과 손실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정확한 관련정보를 얻을 유인을 가지고 있지 않고, 불리한 정보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 압력을 많이 받는다.

검사자와 금융기관 경영자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여러 가지 회피행위를 매우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한 행위로 금융기관이 파산했다해도 검사자가 감독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책임추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임추궁을 받는다 해도 그 처벌이 비교적 관대하다. 그러므로 검사자들은 금융기관의 부정을 찾아내거나 허위사실을 밝히는데 그렇게 큰 유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기회주의적 행위에 대한 경계가 적다.

감독기관은 문제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로 조기개입과 적시퇴출을 활용하는데, 이것 역시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 과정에 따라 집행이 매우 불확실하고 변동적이 된다. 특히 퇴출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망설이게 된다. 이런 식의 드러나지 않는 규제관용(regulatory forbearance)의 형태가 매우 많다.

검사와 감독의 기능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IMF 사태의 주 원인제공자의 하나로 주목받았던 종금사 경우, 동화은행 비자금사건, 한보와 기아사태 등과 같은 많은 금융사건에 잘 드러나 있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가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에 대해 퇴출조치를 단행했을 때, 가장 부실한 금융기관으로 평가를 받고 있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퇴출시키지 않고 존립시켰던 점은 정부의 조기개입과 적시퇴출정책이 정치적 결정과 규제관용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산업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고 금융규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미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시장의 원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 금융시장이 경쟁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충격이 직접적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듯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기관의 감독 및 검사는 그 속성상 효과적이지 못하라 뿐 아니라, 검사자와 피검사기관 간에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현재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금감원의 조직과 기능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에 금감원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금감원의 역할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점은 완전히 부인할 수 없으나, 개별채권자(lender)와 채무자(borrow -er)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단, 현재의 상황에서는 채권자의 대부분이 정부이거나 정부소유의 은행이라 할 수 있으므로, 스스로도 이윤을 추구할 동기가 강하지 않다. 하지만 엄격한 퇴출제도 등을 통해 구조적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금감원은 단지 BIS비율, 최저자본금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필요한 기본원칙들만을 정하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지의 여부만을 검사감독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투자자나 예금자들이 금융기관 선택에 대한 합리적인 결정과 금융기관을 감시감독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여 시장에 공개하는 서비스 역할에 국한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금감원의 검사자와 금융기관간에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며, 금융기관은 정치적인 힘이 아닌 시장의 힘에 의해서 규제되어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훨씬 제고될 것이고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