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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구조조정은 리더쉽에 의해

요즘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조직적 반대가 공공부문-금융부문의 연대, 나아가서 한국노총-민노총간의 연대 형태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른바 冬鬪라는 이지요. 노동조합의 목표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저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가지 주장이 담겨있다고 해석됩니다. 우선 구조조정은 근로자의 고용감축, 즉 해고를 의미하므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노조의 동의를 얻는, 즉 노사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조합에 의해 제기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본질은 고용감축인가의 문제, 그리고 구조조정은 노사합의에 의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고용문제가 구조조정을 막을 수 없어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우선적 이유는 구조조정은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해고를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파들이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분으로 근로자들의 목만 자른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하여 노조를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구조조정의 성공은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은 고용을 창출한다, 아니다의 논쟁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됨으 로써 구조조정의 본질이 흐려지고 마치 고용 문제로 인해서 구조조정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용문제가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구조조정의 본질은 낭비를 제거하여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생산성이 낮은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자원을 재배분하여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구조의 특성에 따라 고용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용이 늘어나는가 줄어드는가는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선진국의 경험으로 보건대 구조조정이 성공한 국가들은 경제전체적으로 고용의 증가와 실업의 감소를 보이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제 구조조정이란 말조차 진부해질 정도로 그 동안 계속 그 필요성이 강조되었음에도 일부 기업의 구조조정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구조조정은 경쟁력회복이라는 거창한 목표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부실을 떨어내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익을 적게 내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적자만 내는 사업을 당장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실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경제전체가 가라앉을 수도 있습니다. 고용이 감축되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구조조정은 실업문제의 해결책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써 대규모의 감원이 발생한 이후 그 자리를 최신 자동화기기가 차지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비용절감을 위하여 이른바 '대체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줄기만 할 뿐 늘지는 않겠지요. 이런 류의 생각은 역사적 뿌리가 깊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도 논리적 뿌리는 이와

같은 산업화의 인력 대체효과입니다. 현재도 일부 학자들은 이 같은 시각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결국 고용을 줄이고 실업자를 양산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그러나 이같은 가설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세계경제의 역사는 연속적인 구조조정의 선상에 있습니다. 희소한 생산자원이 더 높은 생산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이동하는 구조변경의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져갔지만 전체적으로 일자리 숫자는 더 늘어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른바 '스케일효과' 때문입니다. 생산효율의 증가로 생산비가 감소되면 더 다양하고, 더 싸게, 더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있게되므로 생산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고용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지금 어느 은행에서 구조조정으로 창구직원(텔러)을 대폭 줄이고 고객 숫자에 따라 비창구직원이 투입되도록 업무체제를 유연화 했다 합시다. 이로 인하여 비용이 절감되고 이익이 증가하면 이 은행은 이제 더 많은 고객을 위하여 새로운 지점을 열 수 있게되고 그에 따라 일시적으로 줄었던 인력이 다시 늘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스케일 효과에 의한 고용창출입니다. 구조조정의 주요결과는 이제 인력이 텔러와 같은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의 일에서 보다 높은 생산성의 일로 재 배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생산성이 제고되고 새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국가경제 전체에서 볼 때 구조조정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효과는 더욱 뚜렷합니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종사하는 인력이 줄어들고 그 자리는 기계 등이 대신합니다. 그대신 생산성이 높은 부문 및 인력 서비스가 필요로 하는 부문의 고용이 증가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업율은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역U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1980년대부터 구조조정을 거쳤던 미국의 경우 1992년의 7.5%까지 상승하였다 그 이후 감소하였습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거친 영국의 실업율은 1993년 이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에는 유럽에서 가장 실업율이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구조조정은 리더쉽에 의해야


노동조합은 설사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그 내용과 방법에 대하여 노조와 합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노동조합을 의사결정 파트너로서 인정하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는 두 지 이유에서 비현실적이라 하겠습니다.

첫째,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며 구조조정에 따라 발생하는 불이익을 노조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에서 원만한 노사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어디까지나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일 뿐입니다. 노조원의 이익이 손상될 것 같으면 반대하는 것이 본령이지 국가경제를 위하여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구조조정은 부실정리이며 이에 따라 일정부분 고용이 당장 감축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고 경쟁력 회복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훗날의 가능성입니다. 이를 노동조합이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노사합의를 추구한다면 시간적으로 엄청난 지연을 가져와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던가, 아니면 구조조정 규모를 축소하고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구조조정의 효과를 보지도 못하고 다시 부실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당초 계획했던 규모의 고용조정을 못하는 바람에 은행합병의 효과도 보지 못한 채 다시 부실에 빠진 H은행의 최근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구조조정의 성공은 경직된 노사관계의 폐해 척결을 요구하는데 이에 대하여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경제의 부실을 불러온 원인 가운데는 비효율적 경영도 있겠지만 지나친 규제에 따른 기업환경의 경직성과 함께 독점노조적 노사관계에 의한 경직성도 한몫을 차지합니다.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편으로는 관치에 의해 책임경영이 실종된 빈 공간에서 독점노조와 경영진이 결탁한 단체협약이 조직을 경직화시키고 부실을 더 키웠습니다. (금년 봄에 필자는 어느 공기업의 단체협약에서 "기관의 인수합병시에는 반드시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관은 2001년까지 다른 공기업과 합병되도록 수년전부터 공공부문 개혁에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구조조정이 부실을 정리하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잉여인력을 정리할 뿐 아니라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인사제도와 보상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기득권을 가진 노조가 제도개혁에 순하게 응하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성공적인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리더쉽에 의해 이끌어집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이른바 영어권국가의 구조조정이 그러합니다. 네델란드와 같은 국가에서 일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구조조정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이는 노사관계가 성숙한 국가의 경우이며 또한 국가단위 노사정 대화에서 이루어진 추상적 사회적합의이며 구속력을 갖는 수준은 아닙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거나 외국의 사례를 보거나 노사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이란 우리나라의 대립적 노사관계 현실과는 맞지 않으며 실제로는 구조조정 지연 내지 포기와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노동조합의 연대투쟁이 가시화됨에 따라 언론에는 갈등의 내용과 타당성보다는 갈등 자체만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구조조정 원칙 고수'와 '노사정 합의 추구'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슬로건만 내건 채 궂은 일에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갈등의 타협이라는 명목으로 정치권이 물타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경제는 없어지고 이상한 민주주의만 남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익히 보아오던 모습입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인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구조개혁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는 당분간 접어두기를 바랍니다. 공공, 금융부문 못지 않게 노동부문의 개혁이 절실합니다. 노동시장의 시장성회복을 위하여 노동조합에게 기득권 포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리더쉽이 요청됩니다.

(2000년 11월 28일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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