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와 현대증권 그리고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재벌 계열사끼리 소송을 낸다는 것도 처음있는 일이지만 현대중공업의 소송은 단순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의 구경거리가 아닌, 재벌 지배구조개선의 획기적인 성공사례로 다른 재벌들과 정책당국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현대전자는 97년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투신주식을 캐나다의 CIBC은행에 매도했다. 그러나 사실은 주식을 판 것이 아니라,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었다. CIBC는 이자를 계산한 금액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옵션계약을 요구했고 현대그룹은 이를 현대중공업에 떠 넘겼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제3자의 빚을 갚아주는 것에 대해 반발하자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현대중공업에 지급보증각서를 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계약이 만료되어 CIBC는 현대중공업에 2400억원의 상환을 요구했고,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에게 각서의 내용대로 직접 갚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소송은 재벌계열사가 스스로 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재벌 지배구조개선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평가받을 만하다.
현대중공업의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사외이사들이 제구실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들은 10시간에 이른 마라톤회의를 하면서 채무변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경영진을 설득하는 독립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둘째는 경영진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였다. 그동안 뛰어난 경영실적에도 불구하고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하는 일로 시달려온 경영진들은 더 이상 그룹경영이 현대중공업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셋째는 소액주주들의 역할이었다. 주주총회 참석 등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투명경영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이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의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유는 개선된 제도가 작동된 점이다. 주주대표소송 요건이 완화돼 불법적인 거래로 인해 회사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 소액주주들이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에도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참여연대와 소액주주들이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위험이 있음을 이사들이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는 재벌개혁정책의 제도개선에 있어 두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는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선출될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벌기업 사외이사들은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와는 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사외이사들이 회사 돈으로 싼 값에 실권주를 스스로 인수하는 이사회 결의를 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으며,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인수해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소액주주에 의한 소송제기의 가능성이 경영진으로 하여금 스스로 변하게 만든 것이다. 부당한 행위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이사에 대한 적극적 견제수단인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야 함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직접 배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 주주가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못된다. 집단소송제는 사후적인 배상수단일 뿐아니라 소송제기의 위험성을 고려한 이사들이 사전적으로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예방적 수단인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는 시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사외이사가 스스로 독립적인 역할을 하고 주주와 채권자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시장기능이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을 통한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하성/고려대 교수(경영학)
<출처 : 한겨레신문 2000-8-22>
현대전자는 97년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투신주식을 캐나다의 CIBC은행에 매도했다. 그러나 사실은 주식을 판 것이 아니라,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었다. CIBC는 이자를 계산한 금액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옵션계약을 요구했고 현대그룹은 이를 현대중공업에 떠 넘겼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제3자의 빚을 갚아주는 것에 대해 반발하자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현대중공업에 지급보증각서를 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계약이 만료되어 CIBC는 현대중공업에 2400억원의 상환을 요구했고,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에게 각서의 내용대로 직접 갚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소송은 재벌계열사가 스스로 그룹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영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재벌 지배구조개선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평가받을 만하다.
현대중공업의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사외이사들이 제구실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들은 10시간에 이른 마라톤회의를 하면서 채무변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경영진을 설득하는 독립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둘째는 경영진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였다. 그동안 뛰어난 경영실적에도 불구하고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하는 일로 시달려온 경영진들은 더 이상 그룹경영이 현대중공업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셋째는 소액주주들의 역할이었다. 주주총회 참석 등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투명경영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이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의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유는 개선된 제도가 작동된 점이다. 주주대표소송 요건이 완화돼 불법적인 거래로 인해 회사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 소액주주들이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에도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참여연대와 소액주주들이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위험이 있음을 이사들이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는 재벌개혁정책의 제도개선에 있어 두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는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선출될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벌기업 사외이사들은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와는 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사외이사들이 회사 돈으로 싼 값에 실권주를 스스로 인수하는 이사회 결의를 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으며,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인수해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소액주주에 의한 소송제기의 가능성이 경영진으로 하여금 스스로 변하게 만든 것이다. 부당한 행위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이사에 대한 적극적 견제수단인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야 함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직접 배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 주주가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못된다. 집단소송제는 사후적인 배상수단일 뿐아니라 소송제기의 위험성을 고려한 이사들이 사전적으로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예방적 수단인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는 시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사외이사가 스스로 독립적인 역할을 하고 주주와 채권자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시장기능이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을 통한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하성/고려대 교수(경영학)
<출처 : 한겨레신문 20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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