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 여건은 제도적 장치 마련, 정치적 리스크 감소, 북한내 SOC문제의 점진적 해결 등의 면에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난, 북한 당국의 개방 자세·정책, 북한산 제품의 판로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될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던 남북정상회담이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문을 채택·서명하고 막을 내렸다. 남북정상은 이 선언문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자”고 했고 특히 선언문에서의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당국간 대화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경협활성화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후속조치가 실무차원에서 이루어져 남북경협이 앞으로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대북투자는 답보상태>
사실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은 10여 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난 해 남북교역 규모는 3억 3,000만 달러에 그쳤으며 그것도 비거래성 교역을 제외하면 1억 8,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투자사업은 사실상 답보상태이다. 남북경협이 시작된 후 지난해 말까지 남한 기업이 북한에 투자한 돈은 다 합쳐도 1억 1천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금강산 개발 사업에 투자된 1억 달러를 빼면 제조업 투자는 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렇듯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경협의 여건, 특히 북한의 투자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여태까지 남한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대해 “여건만 좋아지면 해 볼 만하다”고 입을 모았었다. 뒤집어 말하면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대북사업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대상은 남한기업의 생산기지로서의 북한이다. 시장으로서의 북한을 생각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대북진출의 메리트>
남한기업들에게 대북진출의 최대 메리트는 ‘북한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 활용을 통한 생산원가 절감’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북한측은 대체로 중국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위탁가공 경험을 보면 위탁가공비 협상을 통해 임금을 사실상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위탁가공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월 100 달러 이하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대북 위탁가공을 경험해 본 회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노동력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다”고 한다. 동남아나 중국의 노동력보다 낫고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남한의 노동력에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낫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측은 북한 최고의 기능인력과 기술자를 선별해서 위탁가공 기업에 투입한다는 것. 둘째, 북한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반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위탁가공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작업환경도 양호하고 물적 인센티브도 낫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한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과 언어와 문화 면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한 기업으로서는 현지 적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경협의 제약요인>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앞서 말한 노동력 면에서의 메리트를 상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한 문제이다. 생산의 기본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기가 턱없이 모자란다. 북한에서 위탁가공이나 합영을 하는 기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또 자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북한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물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위탁가공을 할 때 원자재를 거의 다 남쪽에서 공급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철도, 도로, 항만 등 SOC도 열악한 상태이다. 게다가 기계설비는 낡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1970년 수준이라 한다.
둘째, 북한측의 자세 내지는 정책과 관련된 문제이다. 남북한 주민들의 접촉이 잦아지는 것은 체제불안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 기업인의 북한 내 상주나 체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실무자들의 실무차원 방북도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더욱이 북한측은 남한 기업에 경영권을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합영이나 실제로는 합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합영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주는 것이고 합작은 북한측이 경영권을 갖는 것이다. 즉 북한은 외국자본을 받아들이더라도 경영은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기업의 공단 개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남북한 주민들의 접촉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셋째, 남북간 관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현재 남북간에는 투자 보장, 이중과세방지, 분쟁조정 등과 같은 경협의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당국간 투자 보장장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투자 리스크를 남한 기업이 떠 안을 수밖에 없고 이같은 상황에서는 투자가 확대되기 힘들다. 이와 함께 북한측이 계약을 불이행한다든지 물품에 하자가 발생한다든지 납기가 지연된다든지 하는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 남한 기업이 개별적으로 북한측과 협상·해결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함께 정치적 리스크를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대북사업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남북관계가 갑자기 악화되어 긴장·대치 대결 상태로 치달으면 대북사업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 북한측의 자세 내지는 남북간관계와 관련된 문제로 물류비용 과다를 들 수 있다. 현재 남북간 육상운송로가 뚫리지 않아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물류비가 너무 높다. 예컨대 인천-남포간의 경우, 20’ 컨테이너의 편도 운반비가 800∼1,000 달러 수준이다. 이는 웬만한 동남아 노선 운반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남한기업의 대북진출의 유인 중의 하나가 지리적 근접성인데 이러한 메리트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시장의 문제이다. 즉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그 판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부분 중저가제품인데 이의 가장 중요한 잠재적 수출시장인 미국시장은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조치 때문에 사실상 막혀 있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에 대해 교역금지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산 제품의 대미 수출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이 현재 북한에 적용하고 있는 ‘Column 2’ 관세는 정상 교역 관계(NTR) 대우를 받는 국가들에게 적용되는 ‘Column 1’ 관세보다 최소 2배에서 10배 이상까지 높은 수준이다. 즉 ‘Column 2’ 관세는 금지 관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정상교역 관계의 부여는 의회와의 협의·승인을 거쳐야 하며, 국교를 수립한 후에도 여러 해가 지나야 가능한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섬유·의류, 전기·전자제품, 신발·가방·완구 등을 놓고 보면 북한산 제품의 대미수출은 경쟁상대인 중국제품에 비해 수출단가(FOB기준)면에서 30∼50% 정도 불리하다. 일본·EU도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북한산 제품에는 비교적 높은 관세를 부여한다. 북한은 최혜국 대우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며 WTO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시장 진출도 여의치 않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제조업 부문의 중저가 제품인데 최근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제품들이 포화 상태여서 자국 내에서도 다 소화를 못하기 때문이다.
<경협의 새로운 국면>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간 차원의 경협은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5개항의 합의에 도달했다. 그리고 남북한은 모든 경협실무를 협의할 공식창구로 남북경제 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킬 전망이다. 여기서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조정절차 등의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내 SOC투자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왔던 남북경협은 앞으로는 남북한 당국간 협력을 축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사실 남북한은 92년 2월의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했다. 이 경제공동위에서는 남북간 제반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구 설치문제와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협의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경제공동위는 당시 구성에는 합의를 보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었다. 또 남북한은 92년 9월,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에서 (1)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분쟁조정절차 등에 대해 쌍방이 합의하여 정하고, (2)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비롯해 남북간에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며, (3)물자교류에 대한 대금결제는 청산결제방식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 등에 대해 합의했다. 지금까지 한국 내에서 그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왔던, 경협의 법적·제도적 장치, 남북간 육상운송로 개설은 이미 8년 전에 남북간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뒤에 남북관계의 악화 등으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왔던 남북경협이 남북한 당국간 협력을 축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한다면 경제공동위의 가동을 비롯해 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 실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고 실제로 당국간 협력은 그러한 방향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이후 개선되는 부분>
그렇다면 남북경협 여건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우선 단기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높은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조정절차 등의 관련 제도적 장치를 보자. 투자보장협정은 북한에 투자한 기업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받으며 이익의 송금을 보장받고 원할 경우에 언제든지 북한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할 전망이다. 또 다른 나라 기업보다 불이익이 없는 내국민·최혜국 대우 등의 내용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중과세방지협정은 말 그대로 북한에 진출한 남한기업들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지 않도록 히는 것이다. 분쟁조정절차의 경우, 분쟁 해결 원칙, 공동분쟁해결기구 구성·운영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기업으로서는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투자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정상회담을 계기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관계는 적대적 대결 관계에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적 리스크가 단기적으로는 감소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에서 보았던 경협 환경의 마이너스 요인 5개 가운데 셋째 요인인 남북관계 관련 요인은 단기적으로는 상당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첫째 요인인, 북한의 경제난과 관련된 요인 가운데 전력 등 SOC는 앞으로 남북 당국의 실무 협의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인가 하는 것은 자금을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인 북한측의 적극적인 자세로 미루어보아 앞으로 남한 기업에 대해 기술 지도 및 경영상의 자율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옴직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둘째 요인인, 북한측의 자세와 관련된 요인도 일정 정도 해소될 수 있다. 아울러 앞으로의 남북 당국간 실무 협의에서 육상운송로 개설이 합의된다고 하면 넷째 요인도 상당히 해소되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경협 여건은 종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북사업이 “한번 해볼 만한 사업”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
다만 다섯째 요인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특히 북미·북일관계가 종전보다 얼마나 개선될지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 북일관계는 수교자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북일수교의 성사 가능성 및 시기를 전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북경협의 입장에서는 북미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의 3가지이다. 첫째, 앞에서 이야기했던 수출시장으로서의 의미이다. 둘째, 미국의 동의 또는 암묵적 동의가 없는 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 셋째, 이른바 바세나르 체제 하에서 북한으로의 관련 물자 반출 및 기술 이전이 금지되어 있는 항목이 많다. 바세나르 체제는 국제적 다자간 협의체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은 불확실한 요소가 많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에 대한 통제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균형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핵무기 및 미사일 카드를 통해 체제의 존속과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의 체제의 존속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없는 한 핵 및 미사일 카드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첫째 요인 가운데 자재난, 노후화된 설비 문제 등은 종전과 별 차이가 없는 상태로 남는다. 그리고 북한의 전력, SOC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 문제도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썩 밝지 않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물론 정부는 내년에 남북협력기금을 5,000억원 늘리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최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정부의 경협재원 마련에 제약이 많다. 둘째 요인과 넷째 요인, 즉 남한 기업에 대한 기술 지도 및 경영상의 자율성 부여, 남한기업 공단 개발 허용 및 경제특구지정, 남북간 육상운송로 개설 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어떠할지 지금으로서는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게 보다 적절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측의 태도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에 좀더 무게를 실어줄 수는 있겠지만 이 문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의 당국간 대화가 한창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남북관계가 악화되곤 했던 남북관계의 역사는 남북관계의 앞날을 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화의 연속성 확보, 행동과 실천이 중요>
경협 환경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일보 전진인지 10보 전진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간의 제반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본다.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대화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의 남북정상간 선언문은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한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칠 수도 있다.
<주간경제 576호 2000.06.21>
전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던 남북정상회담이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문을 채택·서명하고 막을 내렸다. 남북정상은 이 선언문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자”고 했고 특히 선언문에서의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당국간 대화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경협활성화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후속조치가 실무차원에서 이루어져 남북경협이 앞으로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대북투자는 답보상태>
사실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은 10여 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난 해 남북교역 규모는 3억 3,000만 달러에 그쳤으며 그것도 비거래성 교역을 제외하면 1억 8,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투자사업은 사실상 답보상태이다. 남북경협이 시작된 후 지난해 말까지 남한 기업이 북한에 투자한 돈은 다 합쳐도 1억 1천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금강산 개발 사업에 투자된 1억 달러를 빼면 제조업 투자는 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렇듯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경협의 여건, 특히 북한의 투자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여태까지 남한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대해 “여건만 좋아지면 해 볼 만하다”고 입을 모았었다. 뒤집어 말하면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대북사업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대상은 남한기업의 생산기지로서의 북한이다. 시장으로서의 북한을 생각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대북진출의 메리트>
남한기업들에게 대북진출의 최대 메리트는 ‘북한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 활용을 통한 생산원가 절감’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북한측은 대체로 중국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위탁가공 경험을 보면 위탁가공비 협상을 통해 임금을 사실상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위탁가공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월 100 달러 이하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대북 위탁가공을 경험해 본 회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노동력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다”고 한다. 동남아나 중국의 노동력보다 낫고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남한의 노동력에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낫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측은 북한 최고의 기능인력과 기술자를 선별해서 위탁가공 기업에 투입한다는 것. 둘째, 북한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반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위탁가공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작업환경도 양호하고 물적 인센티브도 낫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한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과 언어와 문화 면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한 기업으로서는 현지 적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경협의 제약요인>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앞서 말한 노동력 면에서의 메리트를 상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한 문제이다. 생산의 기본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기가 턱없이 모자란다. 북한에서 위탁가공이나 합영을 하는 기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또 자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북한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물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위탁가공을 할 때 원자재를 거의 다 남쪽에서 공급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철도, 도로, 항만 등 SOC도 열악한 상태이다. 게다가 기계설비는 낡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1970년 수준이라 한다.
둘째, 북한측의 자세 내지는 정책과 관련된 문제이다. 남북한 주민들의 접촉이 잦아지는 것은 체제불안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 기업인의 북한 내 상주나 체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실무자들의 실무차원 방북도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더욱이 북한측은 남한 기업에 경영권을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합영이나 실제로는 합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합영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주는 것이고 합작은 북한측이 경영권을 갖는 것이다. 즉 북한은 외국자본을 받아들이더라도 경영은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기업의 공단 개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남북한 주민들의 접촉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셋째, 남북간 관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현재 남북간에는 투자 보장, 이중과세방지, 분쟁조정 등과 같은 경협의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당국간 투자 보장장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투자 리스크를 남한 기업이 떠 안을 수밖에 없고 이같은 상황에서는 투자가 확대되기 힘들다. 이와 함께 북한측이 계약을 불이행한다든지 물품에 하자가 발생한다든지 납기가 지연된다든지 하는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 남한 기업이 개별적으로 북한측과 협상·해결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함께 정치적 리스크를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대북사업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남북관계가 갑자기 악화되어 긴장·대치 대결 상태로 치달으면 대북사업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 북한측의 자세 내지는 남북간관계와 관련된 문제로 물류비용 과다를 들 수 있다. 현재 남북간 육상운송로가 뚫리지 않아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물류비가 너무 높다. 예컨대 인천-남포간의 경우, 20’ 컨테이너의 편도 운반비가 800∼1,000 달러 수준이다. 이는 웬만한 동남아 노선 운반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남한기업의 대북진출의 유인 중의 하나가 지리적 근접성인데 이러한 메리트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시장의 문제이다. 즉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그 판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부분 중저가제품인데 이의 가장 중요한 잠재적 수출시장인 미국시장은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조치 때문에 사실상 막혀 있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에 대해 교역금지조치를 해제할 예정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산 제품의 대미 수출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이 현재 북한에 적용하고 있는 ‘Column 2’ 관세는 정상 교역 관계(NTR) 대우를 받는 국가들에게 적용되는 ‘Column 1’ 관세보다 최소 2배에서 10배 이상까지 높은 수준이다. 즉 ‘Column 2’ 관세는 금지 관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정상교역 관계의 부여는 의회와의 협의·승인을 거쳐야 하며, 국교를 수립한 후에도 여러 해가 지나야 가능한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섬유·의류, 전기·전자제품, 신발·가방·완구 등을 놓고 보면 북한산 제품의 대미수출은 경쟁상대인 중국제품에 비해 수출단가(FOB기준)면에서 30∼50% 정도 불리하다. 일본·EU도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북한산 제품에는 비교적 높은 관세를 부여한다. 북한은 최혜국 대우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며 WTO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시장 진출도 여의치 않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제조업 부문의 중저가 제품인데 최근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제품들이 포화 상태여서 자국 내에서도 다 소화를 못하기 때문이다.
<경협의 새로운 국면>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간 차원의 경협은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5개항의 합의에 도달했다. 그리고 남북한은 모든 경협실무를 협의할 공식창구로 남북경제 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킬 전망이다. 여기서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조정절차 등의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내 SOC투자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왔던 남북경협은 앞으로는 남북한 당국간 협력을 축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사실 남북한은 92년 2월의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했다. 이 경제공동위에서는 남북간 제반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구 설치문제와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협의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경제공동위는 당시 구성에는 합의를 보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었다. 또 남북한은 92년 9월,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에서 (1)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분쟁조정절차 등에 대해 쌍방이 합의하여 정하고, (2)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비롯해 남북간에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며, (3)물자교류에 대한 대금결제는 청산결제방식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 등에 대해 합의했다. 지금까지 한국 내에서 그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왔던, 경협의 법적·제도적 장치, 남북간 육상운송로 개설은 이미 8년 전에 남북간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뒤에 남북관계의 악화 등으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왔던 남북경협이 남북한 당국간 협력을 축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한다면 경제공동위의 가동을 비롯해 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 실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고 실제로 당국간 협력은 그러한 방향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이후 개선되는 부분>
그렇다면 남북경협 여건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우선 단기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높은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조정절차 등의 관련 제도적 장치를 보자. 투자보장협정은 북한에 투자한 기업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받으며 이익의 송금을 보장받고 원할 경우에 언제든지 북한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할 전망이다. 또 다른 나라 기업보다 불이익이 없는 내국민·최혜국 대우 등의 내용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중과세방지협정은 말 그대로 북한에 진출한 남한기업들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지 않도록 히는 것이다. 분쟁조정절차의 경우, 분쟁 해결 원칙, 공동분쟁해결기구 구성·운영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기업으로서는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투자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정상회담을 계기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관계는 적대적 대결 관계에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적 리스크가 단기적으로는 감소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에서 보았던 경협 환경의 마이너스 요인 5개 가운데 셋째 요인인 남북관계 관련 요인은 단기적으로는 상당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첫째 요인인, 북한의 경제난과 관련된 요인 가운데 전력 등 SOC는 앞으로 남북 당국의 실무 협의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인가 하는 것은 자금을 얼마나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인 북한측의 적극적인 자세로 미루어보아 앞으로 남한 기업에 대해 기술 지도 및 경영상의 자율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옴직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둘째 요인인, 북한측의 자세와 관련된 요인도 일정 정도 해소될 수 있다. 아울러 앞으로의 남북 당국간 실무 협의에서 육상운송로 개설이 합의된다고 하면 넷째 요인도 상당히 해소되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경협 여건은 종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북사업이 “한번 해볼 만한 사업”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
다만 다섯째 요인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특히 북미·북일관계가 종전보다 얼마나 개선될지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 북일관계는 수교자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북일수교의 성사 가능성 및 시기를 전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북경협의 입장에서는 북미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의 3가지이다. 첫째, 앞에서 이야기했던 수출시장으로서의 의미이다. 둘째, 미국의 동의 또는 암묵적 동의가 없는 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 셋째, 이른바 바세나르 체제 하에서 북한으로의 관련 물자 반출 및 기술 이전이 금지되어 있는 항목이 많다. 바세나르 체제는 국제적 다자간 협의체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은 불확실한 요소가 많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에 대한 통제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균형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핵무기 및 미사일 카드를 통해 체제의 존속과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의 체제의 존속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없는 한 핵 및 미사일 카드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첫째 요인 가운데 자재난, 노후화된 설비 문제 등은 종전과 별 차이가 없는 상태로 남는다. 그리고 북한의 전력, SOC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 문제도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썩 밝지 않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물론 정부는 내년에 남북협력기금을 5,000억원 늘리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최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정부의 경협재원 마련에 제약이 많다. 둘째 요인과 넷째 요인, 즉 남한 기업에 대한 기술 지도 및 경영상의 자율성 부여, 남한기업 공단 개발 허용 및 경제특구지정, 남북간 육상운송로 개설 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어떠할지 지금으로서는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게 보다 적절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측의 태도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에 좀더 무게를 실어줄 수는 있겠지만 이 문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의 당국간 대화가 한창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남북관계가 악화되곤 했던 남북관계의 역사는 남북관계의 앞날을 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화의 연속성 확보, 행동과 실천이 중요>
경협 환경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일보 전진인지 10보 전진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간의 제반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본다.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대화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의 남북정상간 선언문은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한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칠 수도 있다.
<주간경제 576호 200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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