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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위기 관리 전략

얼마 전 모 일간지는 정부가 현재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했다는 기사를 일면 톱으로 게재 하였다. 그 이유로 의약분업 파동 때 보여주었던 이익집단들의 실력행사에 무기력하게 밀리고 있는 정부의 모습 그리고 실제 해결책도 아니지만 여야 영수회담이라는 절차를 통한 시행방안의 후퇴결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거 큰일 난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한달 여의 보류기간을 거쳐 다시 시작된 의약 분업은 년말을 2개월 남긴 지금까지 지리한 의사들의 파업시위와 장관의 퇴진 그리고 보기에도 답답한 의정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결과가 어떤 결론이 나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의약분업이 국민의 의약 오 남용을 방지하여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파업에 의하여 지금병이 있는 사람의 피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사지에 남은 소수의 병사를 구하기 위하여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지휘관의 용기를 담은 영화를 보면서 소수지만 이를 존중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한다. 항차 사경에 있는 환자들의 문제 있어서야 후손을 위한 의약 분업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둘째 정부의 무성의를 탓할 수 밖에 없는데 의사들의 자기이익 지키기만 탓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장기화 되어 있는 의사들의 파업은 지탄 받을 만하다. 또 자기 몫 찾기에 너무 집착된 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의사들의 속성을 모르고 섣부르게 시작한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 정책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어느 원로 의사의 말대로 의약분업 정책은 사회주의로 변모하기 위한 시대적 상황의 표출이라는 오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아직 소수의 의견이겠지만 그러나 많은 보수 안정세력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다는 것을 정부는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저런 오해와 반대 그리고 정책의 고집속에서 의약 분업의 논쟁은 지속되고 위기는 자라나고 있다.

이 외에도 얼마 전 재경부의 강력한 의지표현으로 내년 1월 시행을 확인 한 예금부분보장제도도 단순히 보장한도를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으로 당초의 염려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정부나 한은이 예상하는 예금이탈 규모는 비우량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전체예금액의 30% 이내 수준인 20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이 정도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간 연구소 들에서는 약 100조 정도가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런 전망들이 확실한 근거를 가지기 어렵지만 행여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가볍게 보아 준비가 소홀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외환거래의 완전 자유화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외환의 경상거래 뿐만 아니라 자본거래도 자유화 되기 때문에 외화 유출을 걱정하게 된다. 이러한 걱정과 관련하여 정부의 보완대책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에 대하여 한국은행 또는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모니터링을 통하여 정부는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상응한 규제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어떤 정책이던 정책변화에 따른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이 부작용을 너무 과장하다보면 마치 큰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되어 새로운 정책변화를 시도하기가 지극히 어려워 진다는 점이다. 그것이 예금부분보장제나 외환거래 완전자유화처럼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않은 일일 경우 걱정이 과장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보장 한도를 올린다든지, 외환거래의 사후 보고제도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보완책이라는 것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아류의 보완은 꼼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류의 보완책이라면 원안부터 그렇게 했어야 옳다. 자유화 한다고 하면서 다시 옭아 매는 자유화를 하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지금 문제삼는 것이 그야말로 걱정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되면 이 정책을 초지알관 추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상의 세가지 사례에서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경제정책의 변화를 추진할 때, 특히 그것이 개혁이라고 일컫을 만큼 주요한 정책의 변경에 있어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만족시키고자 해서는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겉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엉성한 정책을 추진하게 되어 정책변화의 효과보다는 대가만 크게 지불하기 일수이다. 의약분업 정책도 너무 겉 모양새만 찾다보니 실제 추진에 따른 문제를 소홀이 하거나 준비가 부족한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예금부분보장제도 IMF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명분이나, 건당 5천만원 이상의 예금이 전체의 95%가 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간단히 생각하기 보다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으로 얼마나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있고 이를 바탕으로 예금의 보장을 제한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의 바탕이 다져졌는지를 따져보고 들어가야 한다. 단순하게 2천만원은 위험하고 5천만원은 안전하다는 답은 없다. 외환자유화도 자본유출이 그리 불안해서 국세청이던 한국은행에 보고해서 거래자외 뒷덜미를 잡고 있어야 하겠다면 그것은 자유화도 아니고 양두구육이다.

OECD회원국으로서 외환자유화가 불가피하다는 명분 때문에 무작정 시해에 들어 갈 수는 없다. 자유화 단계를 세분해서 차분한 준비와 노력을 다해도 부족한데 정부의 체면 겉치레 때문에 의약분업처럼 막연하게 시행에 들어가놓고 보자는 식이면 이것은 곤란하다. 이런 일들이 개별개별 정책 하나로 끝이 날 때는 별개이지만 일련의 정책들이 다 그렇다고 국민이 인식하게 된다면 이것이 정책의 위기가 되고 이 정책의 위기가 사회 전체의 위기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할 수 있다.

정부의 위기 관리능력은 이 정부 시작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정부는 '준비된 대통령' 이라는 구호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태어났다. 때마침 불어 닥친 IMF위기는 새 대통령의 1년 반 내의 위기극복 약속 속에서 추진되었고, 약속대로 1년 반이 조금 지난 1999년 말 대통령은 IMF극복을 국민에게 선언하였다. 그러고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제 2의 위기라는 황당한 현실 앞에서 두려워 하고 있다. 지금이 무엇이 위기라고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크로 경제지표가 어떻고, 우리사회서 향유하고 있는 넘치는 자유가 그렇고, 교통지옥을 비난 할 만큼 허구많은 자동차들을 보면서 제2의 위기니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항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위기의 내용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릴 계제는 아니다 . 우리 속에 파고 들고 있는 지금의 위기의식은 정부 정책 신뢰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이 정부가 과연 위기관리 능력이 있느냐 하는 불안이다. 지난 IMF가 당장의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미래에 대한 위기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하는 데 대한 불안이다.

이 정부가 출범 초 내걸은 4대 개혁과제는 그 구도면에서 옳았고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동안 금융기관들이 퇴출되고,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너도나도 200%가 되었다고 발표되고 있을 때야 이것 무엇이 되는 거구나 하고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개혁과제의 추진에 대하여 많은 회의를 가지게 한다. 많은 금융기관과 금융인 들이 퇴출되었지만 공적자금이 또 필요하다고 하니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지금 금융기관의 기반이 지난 개혁과정에서 개선되었다고 볼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기업개혁은 그 그림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재무구조를 고치고 공정한 거래를 하면 개혁이 된다는 것인지 기업의 소유구조(Governance)를 고치자는 이야기인지 혼란스럽다. 관련하여 시장의 원리와 정부의 직접 간섭은 어디가 주이고 어디가 종인지 불분명한 현실이다. 퇴출기업의 선정이 정부가 하는 것인지 시장이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심지어 한때 연구기관들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하지말 것을 강압 받고 있다는 말이 나 올 정도로 정부간섭은 무소불위인 때도 있었다. 물론 이런 말들이 과장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뒤섞인 경우 개혁정책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다른 한편 정부 자체개혁은 무엇을 이루었고 이루어 간다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노동개혁은 시작도 되지 않은 것 같다. 노사정협의회는 개혁의 출발점인지 그야말로 거중조정을 하는 곳인지 불분명하다. 이름을 붙여 노동개혁이라 했는데 노동개혁의 청사진은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너무 빠른 시일 내에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다 해낸다는 것은 무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분명한 청사진과 추진일정이 제시되어 온 국민이 매어달려 추진되어도 힘든 일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정부는 일이 급해지면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말로 개혁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일은 대통령 혼자의 의지력으로만 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 정부가 아니 온 국민이 진짜 매어달려도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이 발생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다. 정책 개혁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의 수립과 용의주도한 계획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실천이 따라야 된다. 이러한 모습이 안보이는 가운데 개혁을 외쳐대면 그 자체가 국민으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갖게 만든다.

결국 정부의 위기관리는 위기를 싹트게 한 원인을 제거함으로 해결된다. 즉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럴려면 정부정책의 추진이 좀더 사려 깊은 전략의 수립과 물 샐 틈 없는 계획의 수립 그리고 흔들림 없는 추진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식경영은 정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적인 구호나 간섭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정책 추진 주체를 기술관료로 내려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관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민의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한다. 정권은 바뀌어도 이들의 일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 그만이지 그 이상 내용이나 추진 일정등에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된다. 사회는 정부의 기술관료들을 감싸주고 격려해야지 요즈음의 분위기 처럼 매도해서는 개혁정책의 신뢰회복은 불가능해지고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향상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