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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한국경제론을 생각해본다

한국경제론을 생각해본다

1. 2000년 석양에서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전에 써놓았던 원고들을 뒤적이고 있다. 금년 초 어느 일간지에 계재하였던 필자의 " 새 경제팀 장미빛 청사진?" 을 들추면서 일년전이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같은 오늘의 허탈한 분위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당시 정부는 2000년 경제운영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에 기업과 금융개혁을 마무리하고 벤쳐산업을 계속 활성화하여 2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그야말로 장미빛 청사진을 내어놓았다. 당시 필자의 지적처럼 원유가. 금리. 임금. 환율 등 각종 요소가격 들이 불안한데 정부는 너무 안이한 현실 진단으로 국민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염려들을 하였다.

2. 그러나 일년을 보내면서 지금생각하면 당시 정부의 전망이 옳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당초의 6%보다 높은 9.6%를 전망하고 있고, 실업률도 3.6%로 나타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도 100억불이 넘고 물가도 3%대에서 안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염려했던 원유 임금 등 요소가격 들이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매크로 지표는 당초보다 오히려 좋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우리마음 속에는 제2의 위기가 오는 것 아닌가, 경제가 파멸되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무식의 소치일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고 있는 것일까?

3. 지금의 위기의식은 당장의 위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위기, 불안에서 연유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01년 경제전망도 매크로적으로 5%대의 성장과 소비침체에서 오는 물가안정 그리고 30~40억불의 경상수지 흑자 전망을 한국은행이나 연구기관 들은 지금 하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좋다고 만 할 수는 없지만 그리 나쁜 편은 아니고 더더군다나 경제위기를 걱정할 이유의 수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 위기의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경제론의 실종에서 위기의 실체를 찾아보고자 한다.

4. 3년전 우리는 IMF라고 하는 현실 앞에서 너무 당황해 한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당시 정권교체기의 정치논리에 휩쓸린 점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IMF행을 너무 서둘러 결정해 버리고, 그리고 나서 IMF에 간 것을 무슨 국치일이니 뭐니 하면서 너무 수치스럽게 우리 스스로 만들어 대면서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상황이 자랑스런 일은 아니지만, 1978년 영국도 경험한 바 있고 우리경제는 1985년까지 IMF와 Stand by 협정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아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또 경제가 어려울 때 가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국제기구에 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 것을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우리 스스로를 끝없이 비하하여 왔다. 안 갔으면 좋았지만 기왕 가게 된 것이라면 좀더 차분하고 전략을 세워 일을 추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5. 이 과정에서 우리가 되씹어 후회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가치를 버린 점이다. IMF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세계적기준(Global standard)의 도입을 요구받았다. 소위 은행의 BIS가 그렇고 기업의 재무구조, 지배구조등등 허구 많은 구조개선을 세계적 기준, 아니 미국기준에 맞추어 갈 것을 요구받았고 또 대부분 그대로 따라갔다. 이러한 협상을 많이 하여본 필자는 그 협상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정부는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버린 우를 범했다. 우리경제의 발전수준이나 우리 나름대로의 발전문화는 외면당한 채 오직 미국식기준에 의한 개선요구를 받아드리는 무력함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잣대로 우리경제를 진단하면 한심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방식대로 40여년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발전을 하여 왔는데, 또 세계적기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며 가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우리는 그 방식을 포기하여야만 하였다. 우리 것은 나쁜 것, 미국 것은 좋은 것과 유사한 논리로 우리는 우리발전 방식을 비하하고 포기하였다. 그러고 3년 경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경제는 많은 지수상의 개선을 보게 된다. 또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 개혁이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지 이것이 내년 초 완료되고 나면 경제는 많이 개선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6. 그러나 3년을 끌어오면서 100조가 훨씬 넘는 공적자금을 넣고도 이 지경인데 두 세달 안에 경제개혁이 끝날 일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개혁의 효과로 경제가 상반기중에 좋아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2년 전 정부는 기업군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하여 차입비율을 200%이하로 당장 내리라고 지도하고, 대기업군은 이를 지켜냈노라고 자랑했다. 그 후 1년도 못되어 현대건설은 부도위기에 몰리고 다른 대기업군도 자금사정이 어떻다는 소문들이 계속되고 있다. 갑자기 우량은행 들은 왜 통합해야 하는 지도 모르면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통합한다는 소문을 가지고 노조원들이 은행장을 감금하고 위협하니 은행장은 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곧바로 정부는 통합추진이 포기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연이어서 이 은행 대주주인 미국의 골드만싹스와 ING그룹은 통합에 찬성한다고 하니, 노조나 일반국민은 헷갈릴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정부의 관심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지주회사로 묵는 다는 논리였는데 갑자기 왜 소위 우량은행의 통폐합이 추진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은행의 이해에 의해서 추진된다면 정부는 여기에 관여할 일이 아니다. 부실은행을 지주회사로 묵는다는 말은 통페합을 한다는 이야기인지, 정부에서 말한 대로 감원도 하지않고 몇 년간 느슨하게 그대로 가는 것 인지가 불분명하다. 이것이 마치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일률적 감자는 없다고 하고서 또 감자를 명령해 버리는 이런 정책의 변화가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다. 그러니 은행노조는 연말 대규모 시위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농민들도 개인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몇푼 안 되는 내 빛을 정부가 탕감해준다고 공약하고 왜 우리는 안 해주느냐고 격렬한 시위를 하고 있다.

7. 오늘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 하면 정부는 지금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위기극복에 대한 확신을 주지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보다도 정부는 경제운영에 대하여 너무나 말을 쉽게 뒤집는다. 또 정부가 관여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페셔날리즘의 상실이다. 그러니 정책신뢰를 잃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처음부터 잘못된 구도이지만 IMF를 1년반에 극복한다고 큰소리친 것도 잘못이고, 되지도 않았는데 1년전 IMF 극복을 선언한 것도 잘못이고, 금년 들어 경제가 어려워지는데 그렇지 않다고 낙관한 것도 잘못이고, 낙관하다가 어느날 용기 있게(?) 경제가 나빠졌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고.. 한마디로 전략과 비젼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더욱 큰 문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 생각못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서른 지식이 우리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외국인의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하는 충고와 장사 속으로 교활하게 포장하여 하는 권유를 분간할 능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하는 순간에 우리 시장은 외국에 많이 내어주게 되었다. 자본시장이 그렇고 부동산이 그렇고 기업의 소유구조가 그렇고.. 물론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의 개방이고 가는 길도 그 길이다. 따라서 수구적 시각에서 비판하자는 논리가 아니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 시장이 외국에 넘겨주는 과정을 걱정하는 것이다. 97년 IMF는 93년의 대비책 없는 종금사의 외환업무의 확대가 주원인이었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경제개혁이라는 병 치유과정에서 쓰러지기만 하고 경제를 이끌고 갈 기업군이 생겨나지 않은 취약한 시장을 대비책 없이 외국에 내어 놓은데서 오는 "종속의 위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8.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적절한 예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의 통화위원회제도(Currency Board System)의 운영과정을 드려다 보자. 지난 80년대 매년 600%가 넘는 인플레를 치유할 목적으로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환 및 통화의 중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1991.4월 미국의 월가등 선진국들의 권유에 의하여 통화위원회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러고 10년, 아르헨티나는 지난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고 IMF는 최근 이를 받아드렸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채권금리는 폭등하고, 이 제도를 잘 한 일이라고 추켜세우던 월가는 아르헨티나의 채권을 외면하였다. 지금 아르헨티나의 어려움이 통화위원회제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통화위원회의 단점이 외환 및 통화정책의 자주권 포기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에 정부가 손을 쓸 수 없게된 결과를 가져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때 이 제도를 권유했던 어느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국제사회의 당연한 논리이겠지만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시장도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어려움을 맞이한다면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미국적 가치를 순종한 우리를 칭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9. 우리가 IMF를 치르는 과정에서 소위 "아세아적 가치(Asias Value)"가 논의 된 적이 있다. 미국경제학자들의 일반적 시각은 아세아적 가치를 "연고와 부패"라고 하는 부정적 의미로 매도하였다. 심지어 어떤 이 들은 아세아적 가치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미국의 시각에 동조하면서 아세아적 가치를 한 걸음 더 낳아가 독재정권의 정당화 논리라고 치부하여 버렸다. 우리와는 달리 싱가폴의 이광요 전수상이나 말레지아의 마티르 수상 같은 이는 아세아적 가치를 서양적 가치(Western Value)와 차별화 하면서 헤지편드 들의 규제와 적절한 외환거래의 규율을 강조하였다. 물론 서양사람들 특히 미국인들은 마티르를 비난하고 우리를 칭찬했지만 말레지아 경제가 좋아진 지금 그들은 아르헨티나의 예에서 보듯 우리편을 들기보다는 말레지아 경제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나 당연한 국제적 현실이다.

10."창조적 파괴"는 창조가 있기에 파괴가 갑진 것이지, 파괴 그 자체는 부정적 의미일 뿐이다. 경제개혁도 창조가 전제된 개혁이지 기존 질서를 부정만 하는 것은 파괴일 뿐이다. 지난 3년간이 파괴적 개혁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개혁은 창조적으로 바뀌는 전환을 해야 할 때이다.

11. 이야기를 정리하여 보자. 우리는 IMF를 치루는 과정에서 우리 것 우리의 발전문화를 너무 비하하였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대학에 제대로 된 한국경제론 강의조차 없다. 기껏 있다는 것이 1학년 교양과목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압축발전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부정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지난 40여년의 개발과정에서 우리경제를 이끌어 온 이념, 이끌어 온 주역은 없어져 버렸다. 오히려 개발연대에 몸바쳐 일한 경제전문가 들은 한국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취급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소위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 다음으로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 한국경제인데, 그것을 일궈낸 "근본"을 찾기보다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교양과목이 아닌 정말로 우리가 잘한 부문과 잘 못한 것,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연구해야 하지 안을까? 지난 40년의 경제발자취, 아니 실학사상 이후 지난 300년의 우리의 발전의 근원을 연구하고 97년 IMF를 맞이하게 된 근본원인을 좀더 진지하게 연구하여 이를 토대로 우리의 발전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산학협동과 같은 개념으로 한국경제론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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