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본글은 서울대 정치학과 홈페이지에 최형익님께서 번역한 글입니다.
최형익님께 감사를..
본 글은 멕시코의 치아파스 원주민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제국
주의자들에 맞서 게릴라 투쟁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투쟁을 전개하는
자파티스타 운동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ZapNet'(1996년 8월18일
자)에 올린 것을 완역한 것이다. 본문은 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사회
-경제적 지배양식으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의 제 양상을 실천적 견지
에서 예리하게 정리한 글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더해가며 전 지구
적 지배의 핵심기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본 글은
신자유주의 그 자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 그것에 대항한 정치투
쟁상의 실천지침을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신자유주의, 그
것은 글로벌시대 제국주의의 또 다른 이름일뿐이다(역자주)
신자유주의 :경제적 측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혼란에 대한 혼돈의 이론이고, 사회적 난맥상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이며, 재앙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적 해결방안이다."
("Neoliberalism is the chaotic theory of economic chaos, the stupid
exaltation of social stupidity, and catastrophic political management
of catastrophy")-- Don Durito of the Lacandon
신자유주의 경제학
신자유주의는 19세기 대영제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과 '자
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빌어 그들의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데 사
용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변형이다. 반식민주의적 봉기가 제국을 멸
망시켰다. 30년대의 노동운동과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은 고전
적 식민주의를 종식시켰지만, 그것은 케인즈주의적 경제학에 수용되었
다. 국가의 임금조정, 복지국가론, "개발" (development) 개념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60년대 들어 국제적 주기로 발생한 노동자, 학생, 농민, 여
성, 그리고 생태학에 기반한 저항운동이 케인즈주의를 마감하게 했고,
케인지 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다.
신자유주의는 IMF나 World Bank 같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들
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었으며, 보완되었다. 두뇌집단들과 대학연구
소, 정부기관들은 신자유주의의 주창자, 계획자, 비판가들의 국제적 활
동공간을 마련해주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그 모든 형태에 있어 정부의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신자유주의를 쳐
부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우리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를 혁파
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하나의 전략이다. 다른 많은 범죄
자와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다양한 별칭을 갖고 있다.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공급중심 경제학", "통화주의" "신고전학파 경제학", 그리
고 "구조조정"등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시장'에 대
한 숭배와 시장의 요구에 정부와 개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제행위자
들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전략은 대략 사유
화, 사회비용의 축소, 노조 해체, 토지에 대한 종획 혹은 울타리치기
(enclosure), 저임금, 고이윤, 자유무역,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과 자연의
가속적인 상품화등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영향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다국적기업을 위시한 대기업체를 강력하고 부유
하게 만드는 반면, 그 나머지 거의 모든 것, 특히 노동자계급, 농민, 중
산층과 중소기업들을 빈곤하게 만든다. 정부의 채무감면정책은 수입과
부를 임금에서 이윤으로 이전시킨다. 감축된 식량보조와 복지비, 교육
기금은 노동계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反인플레 정책이란 反임금인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통화정책은 높은 이자율과 높은 실업을 통해
임금을 압박한다. 실업과 줄어든 임금, 값비싼 신용 등은 우리가 생존
을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만 하는 적정임금에서 벗어난 부당노동을 확
연히 증대시켰다. 금융탈규제정책은 신기계를 도입하는데 쓰일 이윤을
비생산적인 각종 투기에 쓰일 수 있게 전환시켰다. 산업 재구조화는
노동자의 힘을 파괴하고 자본연합의 힘을 강화한다. 저임금 노동자와
가난한 공동체들은 고임금 노동자와 부유한 공동체들과 대립한다. 신
자유주의의 지구적 효과는 자본주의에 강력한 힘을 증가시켜주기 위한
하향적 평등화이다. 저발전이 발전을 대체해 왔다.
저항에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민중들은 모든 전선에서 저항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투쟁은 집단적
투쟁이다. 임금을 줄이려는 시도는 기층 노동대중으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한다. 사회적인 지출을 줄이려는 시도는 의회에서 그리고 거리에
서의 저항에 부딛친다. 공유지(free space)에 울타리를 두르려는 시도
에 대항하여 농민과 도시의 불법거주자(squatters), 가상공간시민
(cybernauts)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기조직
(self-organization)을 파괴하기위해 사용되는 새로운 노무기법 역시 저
항에 부딛치고 있다. 황무지와 공동체 소유지를 "천연자원"화하려는
시도도 농민과 환경보호론자들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다. 다국적 노동
자(이민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그리고 외국인 혐오적인 공격들도 다국
적(cross-border)단체들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해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정보산업을 독점하려는 시도 도한 무료로 제공되는 상품(freeware)과
가상공간에 새로운 "스페이스"가 창출됨으로 해서 고전을 면치 못 한
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대한 투쟁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강도는 공동의 또는 상호보완
의로 명료한(self-defined) 기획을 세련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
의) 공세를 차단하기위한 지방단위의 사회적 연대를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의 한 가지 약점은 투쟁의 고립화와 분열에 있
다. 우리를 압박해 들어오는 지구적인 자본가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
해서는 지역뿐만아니라 분야, 습성, 언어 등을 관통하여 지구적 수준의
협력을 달성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화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격
의 지구화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갖는다. 즉, 그 취약성이란 공동의 적
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IMF나 지방정부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제도들은 공격목표가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책 역시 그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사회조직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법에 기반해 있는, 그러나 장차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희
생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전 측면에서 역습당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부의 창출과 분배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새롭고 대안적인
방식들을 상호보완적이고 단결된 실천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과 연계
해야만 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중에 있으며 이 시
도들의 경험과 창의성은 공유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주의로의 통합이
나 또다른 형식의 통합된 후기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다양한 기획들 간에 협력적인 상호연계의 세련
화이다. 더욱이 지방주의(localism)의 연계를 끊거나 분리하는 것도 아
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맞는 대안적인 접근들을 상호연결시킨 새로운
모자이크를 정교하게 하고 우리의 바램들을 더욱 정교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 정치적 측면
"오늘날 멕시코의 모든 사회관계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필요
로한다.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 이 혁명은 오직 정당국가(the
Party-state)체제 밖에서 만 가능하다." ....Don Durito, 1995년 6월 11
일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새로
운"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서구 자본가들
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세계를 자신의 이익
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기적인 개인들로 이루졌다고 묘사하면서, 고
전적 자유주의를 시장 자본주의와 다양한 친자본가적 정부로 봉건적이
고 공동체적인 구조를 대체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했다. 정치적 삶은
어느정도 공유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직업적 정당이 통제하
는 형식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다원주의라는 허울에 가리운채, 실
재의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보유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로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한정됐다.
우리가 이해하는 한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제적이지도 민주적이
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과정이라
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하나의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이는 1당 지배체
제든 복수 정당이 연정을 이루든 변함 없다. (따라서 구소련블럭이나
멕시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당 국가(one party states)체제에서
복수정당 체제로의 전환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확장 기대로 이어질 순
없다.)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은 주로 비선거적인 대중운동
을 통하여 국가로부터 몇몇 양보를 얻어냈다. 1930년대에 있었던 이러
한 노력의 성공은 2차대전 이후 기간의 케인지언 복지국가를 낳았으
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구조화하려 했던 이 국가는 민중의 생활수준을
일정정도 향상시켰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으로 새로운 시민들이 투표
권을 얻었으며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복
지국가의 지평을 벗어나게 되었고, 급기야 복지국가를 위기로 몰아넣
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오늘날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공
동체들을 파괴할뿐만 아니라 과거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인민을 방어하
는 투쟁의 승리로 얻어진 정부의 사회프로그램 마저 파괴하는 것을 합
리화한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적 가치를 강요한다. 자
연과 공해, 인간의 복지, 교육 등 모든 사회적 행위들은 단지 광적인
자본가의 히스테리 아래 이들이 이익 산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
라서만 평가받는다.
공공프로그램의 사적 영역으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시장적 힘으로
부터의 어떠한 보호조치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권력이 입
법부에서 행정부로 넘어감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로비가 갖는 효력은
줄어들었다. 선거때의 논쟁을 지배 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이용은 돈
가진 자들의 손아귀로 권력을 집중시켜왔으며 정당과 기업 후견인들의
권력독점을 강화시켜 주었다.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저항
이러한 모든 변화는 저항에 직면해 왔는데, 그러한 저항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을 보호하려는 노력처럼 단편적인 기반에서 이루
어졌거나, 아니면 현재의 정치체제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민
주주의를 방어 하려는 노력과 같이 때때로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 투쟁에서 얻어낸 성공사례는 우리가 종래에 알고있던 것보
다 많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고자 했던 것과 그들이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실패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저항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제한적 개혁만을 희망함으
로서 체제의 구조 그 자체는 그대로 수용한다는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자유주의의 비민주적 구조 외부에 있으며,
그러한 구조에 반해서 저항하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울 것인가
자유주의와 케인지언 정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정치로 이어지는 일
련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치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인민들이 함께 모여서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
위할 것인가에 대해 집단적이고 공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에 의한 직업적 정치의 민주주의적 허울이
벗겨지고 새로운 방식의 민주정치가 창출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당들이 존속될지라도, 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적 체제내에서
수많은 집단적 자기조직 가운데 일 형태로 그 지위가 격하되어야 한
다. 대안은 있다. 좀더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범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이 케인즈주의의 종말에 기여했으며, 현재 이러한 활동들은
운동을 억압하거나 흡수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시도에 견결히 저항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의 정치투쟁은 사회의 전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견결히
하고 세련되게 할 수 있도록 자체활동의 보다 많은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치아파스(Chiapas)원주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위한 개념
적이고도, 조직적인 핵심을 명료하게 규정했다. 그것은 바로 자율성
(autonomy)이다. 자율성을 조직화하는 방법은 광범하고 다양하나, 공
동체들의 자율성과 인종집단이나 언어집단의 자율성, 지역 혹은 그 외
에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들의 자율성 등은 진정한 다원주
의, 즉 진정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신다원주의(a neo-pluralism)의 중
요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자율성이 정치의 소멸이나 사회의 파편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란 인간사회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요소인 것
이다. 자율성의 정치는 단지 특정가치나 행위에 일련의 보편법칙을 강
제함으로써 그 역동성을 구조화 해 버리는 것에 반대한다. 대신 자율
성의 정치는 지방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공동체들의 코뮤니티내에서 행해지는 끝없는 대화와 상호작
용이라는 비젼을 환영한다.
신자유주의:사회적 측면
"그것은 태생적으로 하나의 혁명으로 자리매김 할 일인데, 그러한 혁
명은 여러종류의 사회적 구성 하에서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정도의 지
지표명과 참여라는 방식으로 다종다양한 전선위에서 펼쳐지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부사령관 마르코스, 1994년 1월 20일
신자유주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 개인주의, 그리고 편협
한 자기이익의 추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사회적 공동선을 야기할
것이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사회적 신조에 기반한 가치 및 의미, 사
고체계등을 포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또한 인민들을 지배하고, 종
속시키며, 동화하고, 배제하는 방식등으로 구성된 전략적 레퍼토리를
제공한다. 노동자들과 학생, 그리고 여성 및 소수민족, 농민들에 의한
투쟁에 대한 자본의 초기반응은 자본주의의 초창기을 위기로 내몰았지
만,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제집단들간의 차이를 수입이나 인종,
성, 그리고 종족성이라는 적대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습득함으로서 집
단들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신보수적 성격의 공공정책은 중산계급에게 조차 손
상을 가하는데, 이러한 공공정책은 중산계급의 사회적 지위하락에 대
한 두려움을 임금위계상의 하락에 대한 투쟁으로 방향전환시킨다. 사
회적 프로그램과 사법적 권리의 격하는 대중운동의 무력화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그들을 대자본의 요구에 취약하게 만든다.
평등을 위한 투쟁은 어퍼머티브 액션(여성이나 흑인등 소수민족에게
취업등 각종 사회적 행위에서 일정한 이득을 미리 부과하는 법안-역
자주)을 죄악시하는 방법을 통해 타격받는다. 교육체계와 대학에서의
문화적 이질성을 위한 투쟁에서의 작지만 소중한 진전은 교수요원과
커리큘럼의 다양성, 그리고 각종 기금에 입각한 연구프로그램을 삭감
하는 방식을 통해 곧장 무위로 돌아간다. 여성의 출산에 있어서의 자
유, 성적 해방, 경제적 독립성은 특히 조직화된 기독교 우파에 의한 악
날한 공격하에 놓여져 왔다. 종교적 제제하에 놓여져왔던 동성연예자
들에 대한 혐오증 역시 사생활에 대한 침탈과 공공법률을 통한 게이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진행된다. 외국인 혐오증적 민족주의는 유색
인에 대한 위협과 이민자에 적대하는 히스테리를 가중시키는데 이용되
어 왔다. 그러한 시도들은 또한 장벽에 둘러싸인 채 무장경비되는 시
외각의 공동체(예를들어 미국의 다윗교파와 같은--역자주)나 작업장을
잉태했다.
신자유주의와 폭력
그러한 적대를 낳는데 핵심적인 것은 공공연히 표출되는 구조적 폭력
이다. 적대의 표명과 물리적 폭력은 다수 공동체와 변방의 무장화, 공
권력의 집행이라는 테러와 대량투옥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자행되왔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 대한 상해, 강간, 경찰에 의한 구타, 유사경찰집
단의 총격, 방화등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자행되왔다.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구조적 폭력은 상징과 이데올로기, 사회정책등을
통해 강화되어 왔으며, 이것은 일부 사람들을 가난과 빈곤, 교육의 결
핍, 피할수 있는, 즉 퇴치할 수 있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 참정권
박탈과 채무를 대신한 노역하에 놓이게 함과 동시에 다른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협박한다. 정부행위의
제한을 요구하는 잘 알려진 수사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마약
과의 전쟁, 국내외에서의 경찰과 군대의 개입, 공공연한 감시를 통해서
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적 역할을 증가시켜왔다. 미육군과 FBI, 그리
고 여타의 군사단위, 경찰요원들은 국경지방에서는 소위 저강도 전쟁
을 개시해왔으며, 도시지역에서는 OH(Operation Hammer),
ORC(Operation Rock Crusher), OHL(Operation Hold the Line)과 같
은 작전을 수행해왔다. 죄수들의 숫자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유색
인종 청년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강제노역소는 대안적 공동체와의 연
계나, 돈벌이를 위해 암시장을 이용해보려는 시도등에 관련된 젊은이
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저항
이러한 모든 적대적 표명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은 개인적으로 혹
은 집단적으로 행해져왔다. 가장 효과적인 저항의 시도는 보다 앞선
시기의 투쟁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은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공간과 공동체, 그리고 자율적인
비공식적 네트웍을 통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신자유
주의자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민중이 쟁취한 성과물들을 훼손시키기
란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민중들은 임금과 사회적 재정지출, 자유시간
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태업, 폭동, 작업거부, 파업등을 통해서 저항해
왔다. 여타의 사람들은 불법무역이나 암거래 체계등의 재분배 형태를
통한 대안적 시장등을 이용해왔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
연극등을 경유한 문화비판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에 대항한 투쟁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극복은 전통적인 제도를 새로운 사회적 네트
웍으로 창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웍은 사란들에게 그들 자신의 배움을 통제할 수 있
게 해주며, 그들의 자원을 자신들의 욕구에 따라 재분배하도록 한다.
또한 그것들은 자신들의 욕구의 발양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줌과 동시
에 상호간에 적대없이도 차이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안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와 인간적 결합을 살아있게
하는 것에 의해 핵가족에 대한 진부하며, 제약적인 찬양으로부터 자유
롭게 벗어났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적 소유와 경쟁, 그리고 무한정의
근로를 통한 개인적 성공이나 과시욕이 강한 소비등의 신자유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도전했다. 공동체 조직과 이웃 그리고 중
심부의 일원이 되는 것에 의해서,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의 생산과 분배
에 있어서 협력적 노력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그들간 인격적 관계를 보
다
자력적이고 상호도움을 주는 형태로 재형상화 해내고 있다. 이들 대안
들중 다수의 것들은 인류와 그 나머지 자연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새로
운 접근법의 추구라는 형태로 현실화되어왔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
을 성공적으로 폐지시키는 길은 오로지 구래의 세계를 가리우는 새세
상 건설과 구세계의 최종적 폐절을 위해 힘을 증대시키는 사람들 모두
의 노력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문화적 측면
신자유주의와 문화
자본주의의 현단계인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새로운(그러나 낡은)
문화전략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민중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며, 그리고
동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역동적이며 다원적 과정으로 정의내려질 수
있는 "문화"는 우리가 세계내에서 이해하며, 다투는 그 모든 것, 즉 이
미지, 욕구, 언술, 정체성, 정신영역, 그리고 지적이며, 미학적 작업 일
반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다. 나아가, 성(gender)과 종족성, 그리고 섹
슈얼리티와 같은 차이의 기축은 문화의 구성적 요소로서, 어떠한 사회
적 형성물도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다. 부를 더욱 상향 이동시
키는 것에 의해서 결핍과 광기의 인공적 환경을 창출해왔으며, 이것은
분리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를 증대시키며, 소비주의를
최고의 문화적 가치로 떠받든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유동성과 민족경제와 국민국가 영역의 재구조화
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종족적, 인종적, 민족적 정체감과
그것들의 관계라는 문화적 형성물에 특정한 영향을 미친다. 1) 방송과
오락산업에 대한 미국의 지구적 지배는 서구적 이미지와 담화로 전 세
계를 맹폭하며, 사실해석에 대한 기본구조를 형성한다. 2) 다양한 인구
구성부분, 즉 탈산업화된 북부의 도시빈민과 남부의 원주민 집단등은
자본이 그들 삶의 공동체적 형태를 파괴하고, 그들을 근로조건이 형편
없는 작업장내로의 통합을 추구함에따라 가공할 공격하에 놓이게 된
다. 3) 신자유주의는 "탈식민지화"된 나라들에서 소규모의 민족부르주
와를 부유하게 하고, 소수의 유색인종이 서구의 대도시내에서 중산계
급화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새로운 이민자의 유입을 쓰고 막는다. 지
배적 문화내에서의 혁신은 형식적으로만 융합적인 다층적 문화주의와
비서구적 문화를 이국적 상품과 양식으로 환원하는 따위를 포함하며,
이것들은 우리를 유연한 동질성이라는 불리는 그러한 새로운 국면으로
안내한다.
문화적 저항과 차이
문화적 지배와 봉쇄전략은 모든 사람들을 수동적 주체로 환원시키는
것에 의해서든, 아니면 활동적인 일부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결코 성공
을 거둘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안적인 문화적 전통과 저항
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키고 있으며, "살해당할 수는 있을지 언
정 스스로 죽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인구의 새로운 교차부문들
이 결코 지배되지 않는 연합과 신국면을 형성하고, 이것들은 자본에
언제나 적대적이었던 가치와 사회적 관계의 생산과 자율적 욕구를 반
영한다. 여기에는 여성들간의 우의, 형제애, 공동체의 형성등이 포함되
며, 이러한 가운데 개인들은 집단적이고, 공유되며, 또한 개성이 존중
되는 문화적 틀내에서 소비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으로 자기 스스
로를 정의내릴 수 있다. 지배적 형태의 서구문화는 역사일반과 식민주
의 노예제의 유산은 물론 성과 계급이라는 양축을 통해서도 구조화되
고 있다. 제 집단들 간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대화는 우리들에게 매우
높은 정치적 우선권을 점하는데, 특히 권력과 권위, 특권등의 불평등한
관계의 맥락내에서 더욱 그렇다. 전위적 역할에 대한 자파티스타의 거
부와 시민사회의 전 영역을 불러내기 위한 다층적 발의권은 문화적으
로나 정치적으로나 교훈적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경험에 대한 지침
이 된다. 여기서 일상적 경험이란 정확히 하나의 가능성 있는 혁명을
발생시켜냐만 하는 곳으로, 이를테면 문화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이건, 현대적이건, 혹은 소위 포스트 모던적 문화형성이
라 불리건 그 모든 것들내의 모든 위계질서에 대해서 맛서 싸워야만
할 것이다. 성적 차별주의, 인종주의, 동성연예자에 대한 혐오, 신분제
도, 종교적/종족적 폭력이 집단과 개인의 수준에서 경험되고 있으며,
모든 것들이 현존하는 지배구조를 형성하기위해 갈갈이 찢기워지고 있
다. 특정문화내에서의 종속적 정체성(예를들면, 미국내의 멕시코계 미
국인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이들)에 어떤 확고한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반 사회운동은 (우파는 물론) 좌파에 의해서 조차 반동적, 또는
협소하게도 민족주의적이거나 부르주와적인 것으로 때때로 일축되어왔
다. 그러나, 해체된 정체성과 역사를 발견하고, 재평가함과 동시에 상
호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프로젝트는 어떤 공간, 즉
동등한 정치적 주체들 사이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영역을 형성하는 정
치적 기획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과정
을 통해, 여러 집단들은 문화적 이종성, 이성에 대한 예우, 국경을 초
월하는 식의 잠재적으로 상호삼투적인 전략을 역시 발전시켜 왔다.
문화적 투쟁
물질적이고 문화적 침탈에 대비, 인민을 보호하는 것에 더하여, 우리는
자율성의 맥락내에서 상호연관을 추구하는 가운데, 영역과 지위를 넘
어서는 해석이라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
적 투쟁을 더욱 정교히 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의미체계의 민주화로서,
이러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많은 민중들이 문화적 생산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고, 동시에 예술향유자 범주에 근접할 수 있다. (자피티스트
넷(ZapNet), 혁명은 기술혁명의 성과에 힘입어야 한다, 시디롬 및 관련
컴퓨터프로젝트등)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방송기술, 초소형 래디오, 공
공접속케이블, 위성국, 대중적 필름처리가 가능한 저렴한 비디오장비등
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배제되온 민중의 목소리에 문화적 교류의 표
현수단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이들 수단들에 대한
접근은 문화적 표현수단에 대한 작금의 기업지배에 대항하여 일치된
싸움을 요구한다.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비위계적인 관계형성을 위
한 새로운 정치문화의 정교화와 끊임없는 대화는 자피티스타 정신을
정의하고, 발전시키며, 전파하는데 핵심적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정체성의 측면
신자유주의와 토지
원주민공동체에 가해진 신자유주의의 가장 극적인 충격은 토지의 이용
권을 얻는 것에 대한 공격이었다. 북미전역을 통해 나프타는 상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신 울타리치기, 즉 종획운동의
기준을 제공했다. 캐나다의 경우 원주민의 땅에 대한 요구에 귀도 귀
울이지 않는 반면, 미국에서는 공공토지에 대한 사유화와 원주민 토지
에 대한 상업화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중시킨다. 멕시코에서는 기름
과 목재, 목초지를 위한 게걸스러운 욕구가 에지달 토지의 사유화와
많은 멕시코 지역내에서 군사화와 억압적 법령제정이라는 결과를 초래
했다. GATT는 세계적 규모에서 모든 공유지나 원주민 토지의 종획,
그리고 인간의 삶을 사유재산에 종속시켜 사적이득을 위한 착취를 가
능케 하는 기준을 제공했다. 그러한 종획운동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단순한 "처녀천연자원"으로 격하시켜, 채굴, 벌목, 토착적 지식의
박탈 혹은 유전공학, 대농장경영을 통해 수탈하게 될 것이다.
토착적 공동체의 생존과 문화적 발전의 물적 토대가 이러저러한 신자
유주의 정책을 통해서 부식되었다. 세계전역를 통해서 원주민들은 토
지로부터의 강제퇴거를 당했고, 그들 공동체내의 문화적 기초를 박탈
당했으며, 도시에서 혹은 대농장에서만 노동할 수 있게 됨으로서, 결국
기업엘리트와 부패정부를 더욱 살찌우게 했다. 심각히 훼손된 문화를
위한 대체물로서 신자유주의는 타인과의 어떤 유대도 없고, 노동과 소
비내에서만 홀로 존재하는 이기적 경제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
라는 새로운 동질적 정체성과 '발전'이라는 날조된 수사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
아메리카 전역을 통해 원주민들의 저항은 지방 수공업자와 농업협동체
로부터 인권감시그룹과 무장 게릴라운동에 이르기까지 점차 조직화되
는 추세가 되어왔다. 조직규모 역시 원주민들이 국제적이고 다양한 종
족연합과 조직을 결성함에 따라서 더욱 커지게 되었다. 멕시코내의
FNI(The Foro Nacional Indigena)는 이러한 운동의 대표적 모델로 자
리잡아가고 있다. 이 포럼은 토착적 공동체간의 항구적 대화와 지역적,
전국적 수준에서 자행될지 모를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신자유주의적 정
책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실천의 기회를 허용한다. 수십년에 걸친 억압
과 연속되는 정치적 갈등은 강력하고, 생동적이며, 전투적인 원주민 운
동을 전개시켰으며, 이러한 운동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형성이라는 새
로운 시기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대해서 정교하고 조직화된 도전
을 제시한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대안적이며, 비자본주의적인 조직방
식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개념적 명증성과 목적의식성에 대한 그들의
발전된 감각은 많은 다른 비-원주민 운동그룹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환경투쟁과 관련된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대안적 관계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례를 제공했다. 지구적 제 세력들이 구분됨과
동시에 자주 유사한 국지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원주민들의 정
교한 이해는 조직과 연합형성을 위한 모델로서 기여하고 있으며, 이것
들은 유사한 투쟁에 관련된 여타의 사람들을 위해서 유용한 것으로 입
증되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있어서의 원주민들의 지도력
국제적인 원주민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투쟁에서 지도력을 행사
해왔다. 멕시코에서 최근 전개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항한 투쟁은 전
세계적 저항운동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그들은 민주주의와 사회정
의, 그리고 평화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 매우 창조적인 방식을 제공했
다. 그들의 공동체에 필수불가결한 이슈에 대한 장구한 토의를 통해
의견일치를 형성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지난한 노력은 저항운동이 채택
한 내재적인 사회적 관계의 모범사례로 기여하고 있으며, 공동체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도록 허용해준다. 공동
체 수준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전통과 공동체적 요구에 뿌리박은
자기결정과 민주적 실천에 대한 토론을 통해서, 국제적인 원주민 운동
은 많은 비원주민적 좌파와 급진적 공동체내에서 대안적 공동체의 민
주적 실천을 전개하기 위한 논쟁을 재활성화해냈다.
원주민운동은 민주적 실천의 전개,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 재생
의 핵심에 공동체의 자율성을 위치지웠다. 원주민의 지율성은 단순한
경제적 자기결정을 넘어서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법적, 정치적 자율
성을 포괄한다. 이러한 자율성 개념은 지역적, 종족적 차이를 인정하
고, 권리와 요구, 문화, 욕구에 대한 일률적이며, 보편적 개념에 기반하
지 않고, 복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체계에 그 토대를 둔다. 이러한
자율성 개념은 모든 지역의 인민들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적 측면
혁명적 변화란 "상이한 방법, 상이한 전선, 상이하고 다양한 수준의 위
임과 참여를 통합시키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그것은 더 이상 고유명
사격의 바로 그(THE) 조직, 그 방법, 그 지도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
다."[Don Durito, 1995년 6월 11일]
개혁과 혁명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 각각의 시기에 대중운동은 자
본가들의 착취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투쟁해 왔다. 1930년대에 북미
와 유럽의 노동자들은 자의적 경영과 주기적으로 노동자를 황폐화시키
는 실업문제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와
점진적인 임금인상, 완전고용과 실업보상, 유급휴가, 사회정책과 정치
에 대한 집단적 목소리를 낼 권리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케
인지주의를 쟁취했다. 그러나 노조는 자본과 협력하여 생산성 협정을
체결했고, 이는 급기야 자유시간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를 무시하게 했
다. 또한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자본의 요구를 선호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었지만, 이는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라는 수사로 덧씌어졌다.
혁명은 점차 개혁으로 완화되었다. 빵과 토지, 존엄과 정의를 위해 혁
명전쟁을 치룬 멕시코와 중국 러시아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혁명이란
단지 수사에 불과할 뿐이고 개혁은 급속한 자본축적을 위해서만 구조
화되어 있는 일종의 국가 자본주의에 자신들이 긴박되어 있음을 발견
하게 되었다. 식민지에 반대하는 투쟁은 형태만 변화하고 실제로는 변
화가 없는 신식민지로 귀결되었다. 이것의 함의는 명확하다. 우리는 세
계 전역에서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즉 진정한 혁명을
성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이 갖는 커다란 약점은 우리들이
상호간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를 만들어
내고, 강제하는 자본의 이해와 정책은 훨씬 더 많이 조직되어 있고, 응
집력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매우 강력하고, 거대한 몇몇 기구들에
의해 고안되고, 추진되고 집행되었다. 우리의 분산을 극복하는 것은 신
자유주의 제도와 유사하게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조직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케일의 장대성 위에서 차이를 지니는그
러한 종류의 통일성을 정교화하는 것이다.
조직화의 작업이 특정한 한 종류(AN)의 조직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제조직들은 관료화되고 경직되고 진화의 필요성에 반응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현상은 새롭게 제기되는 노동조합의
"개혁"에 대한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투쟁의 순환을 가속화시키려는 목표와 공동으로 혹은 상호 보완적인
실천에 착수할 수 있는 능력을 다양하게 조직화된 각 지역의 투쟁이나
보다 광범위한 운동과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전 지구적 조직
화의 과정을 우리가 책임짐으로서 사태는 한결 나아질 것이다.
과거에 혁명적 노력은 이데올로기의 선언과 그것의 고수를 통해 "통일
성"을 찾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런 방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 인간들, 사상들, 문화들, 활동양식들은 대단히 다양
하다. 우리들을 동질화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신에 우
리는 자기유지의 생태론을 구성하기 위해 진화하는 다양하고 상호보완
적인 생명체의 그것처럼, 보다 유기적인 통일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과 투쟁의 순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항상 순환해 왔다. 과거에 그것들은 자본
의 순환 자체를 파열시켰다. 다양한 지역들에서의 투쟁은 무역과 투자
를 통해 상호간에 중개되었고, 상호영향을 주고 받았다. 선원들과 이민
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투쟁의 실천을 전파하였고, 때로 다시 가져 가
기도 하였다.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그러한 순환은 가속화되
었다. 기차와 자동차는 뉴스와 조직가들이 더욱 급속히 순환하도록 하
였다. 전화, 대중매체 그리고 팩스는 각각 그들의 협력과 이해의 순환
들을 촉진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컴퓨터 네트워크
는 극적으로 이런 과정들을 가속화시켰고, 그들의 확산은 점차 지구적
인 보완과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제적인 규모에서 쟈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지지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기술의 유용성을
생생하게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욕구를 명확히 하자
지구화가 된다는 것이 혁명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투쟁을 집중, 연계, 확산, 상호촉진시키
며, 자본과 제국주의의 힘을 그들이 개혁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파열시켜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민중들은
그들이 제거하기를 원하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에 대해서 뿐
만 아니라, 그들이 정교화하고 발전시키기를 원하는 관계들에 대해서
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혁명적 격변의 순간은 매우 창조적
이지만 그러한 창조성은 집단적 에네르기에 의해 새롭게 갱신되고 있
는 현존하는 투쟁으로부터 출현한다.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의
하나는 정교화되어지고 있는 대안들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새로
운 종류의 인간관계, 자연과 인간사이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종류의
가족,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 의료보장과 부의 배분상의 새로운
방법 등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요컨대,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에
있어서의 관건은 바로 이같은 다양한 창조의 과정들이 자본의 파괴적
힘, 즉 상품화, 일면적 가치화, 이윤극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칠줄
모르는 노동, 즉 고역의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글은 서울대 정치학과 홈페이지에 최형익님께서 번역한 글입니다.
최형익님께 감사를..
본 글은 멕시코의 치아파스 원주민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제국
주의자들에 맞서 게릴라 투쟁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투쟁을 전개하는
자파티스타 운동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ZapNet'(1996년 8월18일
자)에 올린 것을 완역한 것이다. 본문은 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사회
-경제적 지배양식으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의 제 양상을 실천적 견지
에서 예리하게 정리한 글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더해가며 전 지구
적 지배의 핵심기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본 글은
신자유주의 그 자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 그것에 대항한 정치투
쟁상의 실천지침을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신자유주의, 그
것은 글로벌시대 제국주의의 또 다른 이름일뿐이다(역자주)
신자유주의 :경제적 측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혼란에 대한 혼돈의 이론이고, 사회적 난맥상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이며, 재앙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적 해결방안이다."
("Neoliberalism is the chaotic theory of economic chaos, the stupid
exaltation of social stupidity, and catastrophic political management
of catastrophy")-- Don Durito of the Lacandon
신자유주의 경제학
신자유주의는 19세기 대영제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과 '자
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빌어 그들의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데 사
용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변형이다. 반식민주의적 봉기가 제국을 멸
망시켰다. 30년대의 노동운동과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은 고전
적 식민주의를 종식시켰지만, 그것은 케인즈주의적 경제학에 수용되었
다. 국가의 임금조정, 복지국가론, "개발" (development) 개념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60년대 들어 국제적 주기로 발생한 노동자, 학생, 농민, 여
성, 그리고 생태학에 기반한 저항운동이 케인즈주의를 마감하게 했고,
케인지 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다.
신자유주의는 IMF나 World Bank 같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들
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었으며, 보완되었다. 두뇌집단들과 대학연구
소, 정부기관들은 신자유주의의 주창자, 계획자, 비판가들의 국제적 활
동공간을 마련해주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그 모든 형태에 있어 정부의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신자유주의를 쳐
부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우리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를 혁파
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하나의 전략이다. 다른 많은 범죄
자와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다양한 별칭을 갖고 있다.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공급중심 경제학", "통화주의" "신고전학파 경제학", 그리
고 "구조조정"등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시장'에 대
한 숭배와 시장의 요구에 정부와 개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제행위자
들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전략은 대략 사유
화, 사회비용의 축소, 노조 해체, 토지에 대한 종획 혹은 울타리치기
(enclosure), 저임금, 고이윤, 자유무역,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과 자연의
가속적인 상품화등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영향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다국적기업을 위시한 대기업체를 강력하고 부유
하게 만드는 반면, 그 나머지 거의 모든 것, 특히 노동자계급, 농민, 중
산층과 중소기업들을 빈곤하게 만든다. 정부의 채무감면정책은 수입과
부를 임금에서 이윤으로 이전시킨다. 감축된 식량보조와 복지비, 교육
기금은 노동계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反인플레 정책이란 反임금인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통화정책은 높은 이자율과 높은 실업을 통해
임금을 압박한다. 실업과 줄어든 임금, 값비싼 신용 등은 우리가 생존
을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만 하는 적정임금에서 벗어난 부당노동을 확
연히 증대시켰다. 금융탈규제정책은 신기계를 도입하는데 쓰일 이윤을
비생산적인 각종 투기에 쓰일 수 있게 전환시켰다. 산업 재구조화는
노동자의 힘을 파괴하고 자본연합의 힘을 강화한다. 저임금 노동자와
가난한 공동체들은 고임금 노동자와 부유한 공동체들과 대립한다. 신
자유주의의 지구적 효과는 자본주의에 강력한 힘을 증가시켜주기 위한
하향적 평등화이다. 저발전이 발전을 대체해 왔다.
저항에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민중들은 모든 전선에서 저항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투쟁은 집단적
투쟁이다. 임금을 줄이려는 시도는 기층 노동대중으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한다. 사회적인 지출을 줄이려는 시도는 의회에서 그리고 거리에
서의 저항에 부딛친다. 공유지(free space)에 울타리를 두르려는 시도
에 대항하여 농민과 도시의 불법거주자(squatters), 가상공간시민
(cybernauts)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기조직
(self-organization)을 파괴하기위해 사용되는 새로운 노무기법 역시 저
항에 부딛치고 있다. 황무지와 공동체 소유지를 "천연자원"화하려는
시도도 농민과 환경보호론자들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다. 다국적 노동
자(이민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그리고 외국인 혐오적인 공격들도 다국
적(cross-border)단체들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해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정보산업을 독점하려는 시도 도한 무료로 제공되는 상품(freeware)과
가상공간에 새로운 "스페이스"가 창출됨으로 해서 고전을 면치 못 한
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대한 투쟁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강도는 공동의 또는 상호보완
의로 명료한(self-defined) 기획을 세련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
의) 공세를 차단하기위한 지방단위의 사회적 연대를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의 한 가지 약점은 투쟁의 고립화와 분열에 있
다. 우리를 압박해 들어오는 지구적인 자본가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
해서는 지역뿐만아니라 분야, 습성, 언어 등을 관통하여 지구적 수준의
협력을 달성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화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격
의 지구화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갖는다. 즉, 그 취약성이란 공동의 적
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IMF나 지방정부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제도들은 공격목표가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책 역시 그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사회조직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법에 기반해 있는, 그러나 장차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희
생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전 측면에서 역습당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부의 창출과 분배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새롭고 대안적인
방식들을 상호보완적이고 단결된 실천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과 연계
해야만 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중에 있으며 이 시
도들의 경험과 창의성은 공유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주의로의 통합이
나 또다른 형식의 통합된 후기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다양한 기획들 간에 협력적인 상호연계의 세련
화이다. 더욱이 지방주의(localism)의 연계를 끊거나 분리하는 것도 아
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맞는 대안적인 접근들을 상호연결시킨 새로운
모자이크를 정교하게 하고 우리의 바램들을 더욱 정교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 정치적 측면
"오늘날 멕시코의 모든 사회관계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필요
로한다.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 이 혁명은 오직 정당국가(the
Party-state)체제 밖에서 만 가능하다." ....Don Durito, 1995년 6월 11
일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새로
운"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서구 자본가들
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세계를 자신의 이익
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기적인 개인들로 이루졌다고 묘사하면서, 고
전적 자유주의를 시장 자본주의와 다양한 친자본가적 정부로 봉건적이
고 공동체적인 구조를 대체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했다. 정치적 삶은
어느정도 공유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직업적 정당이 통제하
는 형식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다원주의라는 허울에 가리운채, 실
재의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보유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로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한정됐다.
우리가 이해하는 한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제적이지도 민주적이
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과정이라
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하나의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이는 1당 지배체
제든 복수 정당이 연정을 이루든 변함 없다. (따라서 구소련블럭이나
멕시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당 국가(one party states)체제에서
복수정당 체제로의 전환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확장 기대로 이어질 순
없다.)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은 주로 비선거적인 대중운동
을 통하여 국가로부터 몇몇 양보를 얻어냈다. 1930년대에 있었던 이러
한 노력의 성공은 2차대전 이후 기간의 케인지언 복지국가를 낳았으
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구조화하려 했던 이 국가는 민중의 생활수준을
일정정도 향상시켰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으로 새로운 시민들이 투표
권을 얻었으며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복
지국가의 지평을 벗어나게 되었고, 급기야 복지국가를 위기로 몰아넣
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오늘날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공
동체들을 파괴할뿐만 아니라 과거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인민을 방어하
는 투쟁의 승리로 얻어진 정부의 사회프로그램 마저 파괴하는 것을 합
리화한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적 가치를 강요한다. 자
연과 공해, 인간의 복지, 교육 등 모든 사회적 행위들은 단지 광적인
자본가의 히스테리 아래 이들이 이익 산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
라서만 평가받는다.
공공프로그램의 사적 영역으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시장적 힘으로
부터의 어떠한 보호조치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권력이 입
법부에서 행정부로 넘어감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로비가 갖는 효력은
줄어들었다. 선거때의 논쟁을 지배 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이용은 돈
가진 자들의 손아귀로 권력을 집중시켜왔으며 정당과 기업 후견인들의
권력독점을 강화시켜 주었다.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저항
이러한 모든 변화는 저항에 직면해 왔는데, 그러한 저항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을 보호하려는 노력처럼 단편적인 기반에서 이루
어졌거나, 아니면 현재의 정치체제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민
주주의를 방어 하려는 노력과 같이 때때로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 투쟁에서 얻어낸 성공사례는 우리가 종래에 알고있던 것보
다 많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고자 했던 것과 그들이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실패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저항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제한적 개혁만을 희망함으
로서 체제의 구조 그 자체는 그대로 수용한다는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자유주의의 비민주적 구조 외부에 있으며,
그러한 구조에 반해서 저항하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울 것인가
자유주의와 케인지언 정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정치로 이어지는 일
련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치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인민들이 함께 모여서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
위할 것인가에 대해 집단적이고 공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에 의한 직업적 정치의 민주주의적 허울이
벗겨지고 새로운 방식의 민주정치가 창출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당들이 존속될지라도, 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적 체제내에서
수많은 집단적 자기조직 가운데 일 형태로 그 지위가 격하되어야 한
다. 대안은 있다. 좀더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범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이 케인즈주의의 종말에 기여했으며, 현재 이러한 활동들은
운동을 억압하거나 흡수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시도에 견결히 저항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의 정치투쟁은 사회의 전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견결히
하고 세련되게 할 수 있도록 자체활동의 보다 많은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치아파스(Chiapas)원주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위한 개념
적이고도, 조직적인 핵심을 명료하게 규정했다. 그것은 바로 자율성
(autonomy)이다. 자율성을 조직화하는 방법은 광범하고 다양하나, 공
동체들의 자율성과 인종집단이나 언어집단의 자율성, 지역 혹은 그 외
에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집단들의 자율성 등은 진정한 다원주
의, 즉 진정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신다원주의(a neo-pluralism)의 중
요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자율성이 정치의 소멸이나 사회의 파편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란 인간사회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요소인 것
이다. 자율성의 정치는 단지 특정가치나 행위에 일련의 보편법칙을 강
제함으로써 그 역동성을 구조화 해 버리는 것에 반대한다. 대신 자율
성의 정치는 지방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공동체들의 코뮤니티내에서 행해지는 끝없는 대화와 상호작
용이라는 비젼을 환영한다.
신자유주의:사회적 측면
"그것은 태생적으로 하나의 혁명으로 자리매김 할 일인데, 그러한 혁
명은 여러종류의 사회적 구성 하에서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정도의 지
지표명과 참여라는 방식으로 다종다양한 전선위에서 펼쳐지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부사령관 마르코스, 1994년 1월 20일
신자유주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 개인주의, 그리고 편협
한 자기이익의 추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사회적 공동선을 야기할
것이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사회적 신조에 기반한 가치 및 의미, 사
고체계등을 포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또한 인민들을 지배하고, 종
속시키며, 동화하고, 배제하는 방식등으로 구성된 전략적 레퍼토리를
제공한다. 노동자들과 학생, 그리고 여성 및 소수민족, 농민들에 의한
투쟁에 대한 자본의 초기반응은 자본주의의 초창기을 위기로 내몰았지
만,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제집단들간의 차이를 수입이나 인종,
성, 그리고 종족성이라는 적대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습득함으로서 집
단들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신보수적 성격의 공공정책은 중산계급에게 조차 손
상을 가하는데, 이러한 공공정책은 중산계급의 사회적 지위하락에 대
한 두려움을 임금위계상의 하락에 대한 투쟁으로 방향전환시킨다. 사
회적 프로그램과 사법적 권리의 격하는 대중운동의 무력화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그들을 대자본의 요구에 취약하게 만든다.
평등을 위한 투쟁은 어퍼머티브 액션(여성이나 흑인등 소수민족에게
취업등 각종 사회적 행위에서 일정한 이득을 미리 부과하는 법안-역
자주)을 죄악시하는 방법을 통해 타격받는다. 교육체계와 대학에서의
문화적 이질성을 위한 투쟁에서의 작지만 소중한 진전은 교수요원과
커리큘럼의 다양성, 그리고 각종 기금에 입각한 연구프로그램을 삭감
하는 방식을 통해 곧장 무위로 돌아간다. 여성의 출산에 있어서의 자
유, 성적 해방, 경제적 독립성은 특히 조직화된 기독교 우파에 의한 악
날한 공격하에 놓여져 왔다. 종교적 제제하에 놓여져왔던 동성연예자
들에 대한 혐오증 역시 사생활에 대한 침탈과 공공법률을 통한 게이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진행된다. 외국인 혐오증적 민족주의는 유색
인에 대한 위협과 이민자에 적대하는 히스테리를 가중시키는데 이용되
어 왔다. 그러한 시도들은 또한 장벽에 둘러싸인 채 무장경비되는 시
외각의 공동체(예를들어 미국의 다윗교파와 같은--역자주)나 작업장을
잉태했다.
신자유주의와 폭력
그러한 적대를 낳는데 핵심적인 것은 공공연히 표출되는 구조적 폭력
이다. 적대의 표명과 물리적 폭력은 다수 공동체와 변방의 무장화, 공
권력의 집행이라는 테러와 대량투옥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자행되왔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 대한 상해, 강간, 경찰에 의한 구타, 유사경찰집
단의 총격, 방화등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자행되왔다.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구조적 폭력은 상징과 이데올로기, 사회정책등을
통해 강화되어 왔으며, 이것은 일부 사람들을 가난과 빈곤, 교육의 결
핍, 피할수 있는, 즉 퇴치할 수 있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 참정권
박탈과 채무를 대신한 노역하에 놓이게 함과 동시에 다른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협박한다. 정부행위의
제한을 요구하는 잘 알려진 수사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마약
과의 전쟁, 국내외에서의 경찰과 군대의 개입, 공공연한 감시를 통해서
사회에 대한 국가의 개입적 역할을 증가시켜왔다. 미육군과 FBI, 그리
고 여타의 군사단위, 경찰요원들은 국경지방에서는 소위 저강도 전쟁
을 개시해왔으며, 도시지역에서는 OH(Operation Hammer),
ORC(Operation Rock Crusher), OHL(Operation Hold the Line)과 같
은 작전을 수행해왔다. 죄수들의 숫자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유색
인종 청년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강제노역소는 대안적 공동체와의 연
계나, 돈벌이를 위해 암시장을 이용해보려는 시도등에 관련된 젊은이
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저항
이러한 모든 적대적 표명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은 개인적으로 혹
은 집단적으로 행해져왔다. 가장 효과적인 저항의 시도는 보다 앞선
시기의 투쟁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은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공간과 공동체, 그리고 자율적인
비공식적 네트웍을 통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신자유
주의자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민중이 쟁취한 성과물들을 훼손시키기
란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민중들은 임금과 사회적 재정지출, 자유시간
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태업, 폭동, 작업거부, 파업등을 통해서 저항해
왔다. 여타의 사람들은 불법무역이나 암거래 체계등의 재분배 형태를
통한 대안적 시장등을 이용해왔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
연극등을 경유한 문화비판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에 대항한 투쟁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극복은 전통적인 제도를 새로운 사회적 네트
웍으로 창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웍은 사란들에게 그들 자신의 배움을 통제할 수 있
게 해주며, 그들의 자원을 자신들의 욕구에 따라 재분배하도록 한다.
또한 그것들은 자신들의 욕구의 발양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줌과 동시
에 상호간에 적대없이도 차이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안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와 인간적 결합을 살아있게
하는 것에 의해 핵가족에 대한 진부하며, 제약적인 찬양으로부터 자유
롭게 벗어났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적 소유와 경쟁, 그리고 무한정의
근로를 통한 개인적 성공이나 과시욕이 강한 소비등의 신자유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도전했다. 공동체 조직과 이웃 그리고 중
심부의 일원이 되는 것에 의해서,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의 생산과 분배
에 있어서 협력적 노력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그들간 인격적 관계를 보
다
자력적이고 상호도움을 주는 형태로 재형상화 해내고 있다. 이들 대안
들중 다수의 것들은 인류와 그 나머지 자연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새로
운 접근법의 추구라는 형태로 현실화되어왔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
을 성공적으로 폐지시키는 길은 오로지 구래의 세계를 가리우는 새세
상 건설과 구세계의 최종적 폐절을 위해 힘을 증대시키는 사람들 모두
의 노력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문화적 측면
신자유주의와 문화
자본주의의 현단계인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새로운(그러나 낡은)
문화전략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민중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며, 그리고
동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역동적이며 다원적 과정으로 정의내려질 수
있는 "문화"는 우리가 세계내에서 이해하며, 다투는 그 모든 것, 즉 이
미지, 욕구, 언술, 정체성, 정신영역, 그리고 지적이며, 미학적 작업 일
반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다. 나아가, 성(gender)과 종족성, 그리고 섹
슈얼리티와 같은 차이의 기축은 문화의 구성적 요소로서, 어떠한 사회
적 형성물도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다. 부를 더욱 상향 이동시
키는 것에 의해서 결핍과 광기의 인공적 환경을 창출해왔으며, 이것은
분리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를 증대시키며, 소비주의를
최고의 문화적 가치로 떠받든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유동성과 민족경제와 국민국가 영역의 재구조화
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종족적, 인종적, 민족적 정체감과
그것들의 관계라는 문화적 형성물에 특정한 영향을 미친다. 1) 방송과
오락산업에 대한 미국의 지구적 지배는 서구적 이미지와 담화로 전 세
계를 맹폭하며, 사실해석에 대한 기본구조를 형성한다. 2) 다양한 인구
구성부분, 즉 탈산업화된 북부의 도시빈민과 남부의 원주민 집단등은
자본이 그들 삶의 공동체적 형태를 파괴하고, 그들을 근로조건이 형편
없는 작업장내로의 통합을 추구함에따라 가공할 공격하에 놓이게 된
다. 3) 신자유주의는 "탈식민지화"된 나라들에서 소규모의 민족부르주
와를 부유하게 하고, 소수의 유색인종이 서구의 대도시내에서 중산계
급화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새로운 이민자의 유입을 쓰고 막는다. 지
배적 문화내에서의 혁신은 형식적으로만 융합적인 다층적 문화주의와
비서구적 문화를 이국적 상품과 양식으로 환원하는 따위를 포함하며,
이것들은 우리를 유연한 동질성이라는 불리는 그러한 새로운 국면으로
안내한다.
문화적 저항과 차이
문화적 지배와 봉쇄전략은 모든 사람들을 수동적 주체로 환원시키는
것에 의해서든, 아니면 활동적인 일부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결코 성공
을 거둘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안적인 문화적 전통과 저항
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키고 있으며, "살해당할 수는 있을지 언
정 스스로 죽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인구의 새로운 교차부문들
이 결코 지배되지 않는 연합과 신국면을 형성하고, 이것들은 자본에
언제나 적대적이었던 가치와 사회적 관계의 생산과 자율적 욕구를 반
영한다. 여기에는 여성들간의 우의, 형제애, 공동체의 형성등이 포함되
며, 이러한 가운데 개인들은 집단적이고, 공유되며, 또한 개성이 존중
되는 문화적 틀내에서 소비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으로 자기 스스
로를 정의내릴 수 있다. 지배적 형태의 서구문화는 역사일반과 식민주
의 노예제의 유산은 물론 성과 계급이라는 양축을 통해서도 구조화되
고 있다. 제 집단들 간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대화는 우리들에게 매우
높은 정치적 우선권을 점하는데, 특히 권력과 권위, 특권등의 불평등한
관계의 맥락내에서 더욱 그렇다. 전위적 역할에 대한 자파티스타의 거
부와 시민사회의 전 영역을 불러내기 위한 다층적 발의권은 문화적으
로나 정치적으로나 교훈적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경험에 대한 지침
이 된다. 여기서 일상적 경험이란 정확히 하나의 가능성 있는 혁명을
발생시켜냐만 하는 곳으로, 이를테면 문화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이건, 현대적이건, 혹은 소위 포스트 모던적 문화형성이
라 불리건 그 모든 것들내의 모든 위계질서에 대해서 맛서 싸워야만
할 것이다. 성적 차별주의, 인종주의, 동성연예자에 대한 혐오, 신분제
도, 종교적/종족적 폭력이 집단과 개인의 수준에서 경험되고 있으며,
모든 것들이 현존하는 지배구조를 형성하기위해 갈갈이 찢기워지고 있
다. 특정문화내에서의 종속적 정체성(예를들면, 미국내의 멕시코계 미
국인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이들)에 어떤 확고한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반 사회운동은 (우파는 물론) 좌파에 의해서 조차 반동적, 또는
협소하게도 민족주의적이거나 부르주와적인 것으로 때때로 일축되어왔
다. 그러나, 해체된 정체성과 역사를 발견하고, 재평가함과 동시에 상
호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프로젝트는 어떤 공간, 즉
동등한 정치적 주체들 사이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영역을 형성하는 정
치적 기획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과정
을 통해, 여러 집단들은 문화적 이종성, 이성에 대한 예우, 국경을 초
월하는 식의 잠재적으로 상호삼투적인 전략을 역시 발전시켜 왔다.
문화적 투쟁
물질적이고 문화적 침탈에 대비, 인민을 보호하는 것에 더하여, 우리는
자율성의 맥락내에서 상호연관을 추구하는 가운데, 영역과 지위를 넘
어서는 해석이라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
적 투쟁을 더욱 정교히 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의미체계의 민주화로서,
이러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많은 민중들이 문화적 생산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고, 동시에 예술향유자 범주에 근접할 수 있다. (자피티스트
넷(ZapNet), 혁명은 기술혁명의 성과에 힘입어야 한다, 시디롬 및 관련
컴퓨터프로젝트등)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방송기술, 초소형 래디오, 공
공접속케이블, 위성국, 대중적 필름처리가 가능한 저렴한 비디오장비등
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배제되온 민중의 목소리에 문화적 교류의 표
현수단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이들 수단들에 대한
접근은 문화적 표현수단에 대한 작금의 기업지배에 대항하여 일치된
싸움을 요구한다.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비위계적인 관계형성을 위
한 새로운 정치문화의 정교화와 끊임없는 대화는 자피티스타 정신을
정의하고, 발전시키며, 전파하는데 핵심적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정체성의 측면
신자유주의와 토지
원주민공동체에 가해진 신자유주의의 가장 극적인 충격은 토지의 이용
권을 얻는 것에 대한 공격이었다. 북미전역을 통해 나프타는 상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신 울타리치기, 즉 종획운동의
기준을 제공했다. 캐나다의 경우 원주민의 땅에 대한 요구에 귀도 귀
울이지 않는 반면, 미국에서는 공공토지에 대한 사유화와 원주민 토지
에 대한 상업화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중시킨다. 멕시코에서는 기름
과 목재, 목초지를 위한 게걸스러운 욕구가 에지달 토지의 사유화와
많은 멕시코 지역내에서 군사화와 억압적 법령제정이라는 결과를 초래
했다. GATT는 세계적 규모에서 모든 공유지나 원주민 토지의 종획,
그리고 인간의 삶을 사유재산에 종속시켜 사적이득을 위한 착취를 가
능케 하는 기준을 제공했다. 그러한 종획운동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단순한 "처녀천연자원"으로 격하시켜, 채굴, 벌목, 토착적 지식의
박탈 혹은 유전공학, 대농장경영을 통해 수탈하게 될 것이다.
토착적 공동체의 생존과 문화적 발전의 물적 토대가 이러저러한 신자
유주의 정책을 통해서 부식되었다. 세계전역를 통해서 원주민들은 토
지로부터의 강제퇴거를 당했고, 그들 공동체내의 문화적 기초를 박탈
당했으며, 도시에서 혹은 대농장에서만 노동할 수 있게 됨으로서, 결국
기업엘리트와 부패정부를 더욱 살찌우게 했다. 심각히 훼손된 문화를
위한 대체물로서 신자유주의는 타인과의 어떤 유대도 없고, 노동과 소
비내에서만 홀로 존재하는 이기적 경제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
라는 새로운 동질적 정체성과 '발전'이라는 날조된 수사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원주민의 저항
아메리카 전역을 통해 원주민들의 저항은 지방 수공업자와 농업협동체
로부터 인권감시그룹과 무장 게릴라운동에 이르기까지 점차 조직화되
는 추세가 되어왔다. 조직규모 역시 원주민들이 국제적이고 다양한 종
족연합과 조직을 결성함에 따라서 더욱 커지게 되었다. 멕시코내의
FNI(The Foro Nacional Indigena)는 이러한 운동의 대표적 모델로 자
리잡아가고 있다. 이 포럼은 토착적 공동체간의 항구적 대화와 지역적,
전국적 수준에서 자행될지 모를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신자유주의적 정
책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실천의 기회를 허용한다. 수십년에 걸친 억압
과 연속되는 정치적 갈등은 강력하고, 생동적이며, 전투적인 원주민 운
동을 전개시켰으며, 이러한 운동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형성이라는 새
로운 시기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대해서 정교하고 조직화된 도전
을 제시한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대안적이며, 비자본주의적인 조직방
식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개념적 명증성과 목적의식성에 대한 그들의
발전된 감각은 많은 다른 비-원주민 운동그룹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환경투쟁과 관련된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대안적 관계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례를 제공했다. 지구적 제 세력들이 구분됨과
동시에 자주 유사한 국지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원주민들의 정
교한 이해는 조직과 연합형성을 위한 모델로서 기여하고 있으며, 이것
들은 유사한 투쟁에 관련된 여타의 사람들을 위해서 유용한 것으로 입
증되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있어서의 원주민들의 지도력
국제적인 원주민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투쟁에서 지도력을 행사
해왔다. 멕시코에서 최근 전개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항한 투쟁은 전
세계적 저항운동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그들은 민주주의와 사회정
의, 그리고 평화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 매우 창조적인 방식을 제공했
다. 그들의 공동체에 필수불가결한 이슈에 대한 장구한 토의를 통해
의견일치를 형성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지난한 노력은 저항운동이 채택
한 내재적인 사회적 관계의 모범사례로 기여하고 있으며, 공동체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도록 허용해준다. 공동
체 수준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전통과 공동체적 요구에 뿌리박은
자기결정과 민주적 실천에 대한 토론을 통해서, 국제적인 원주민 운동
은 많은 비원주민적 좌파와 급진적 공동체내에서 대안적 공동체의 민
주적 실천을 전개하기 위한 논쟁을 재활성화해냈다.
원주민운동은 민주적 실천의 전개,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 재생
의 핵심에 공동체의 자율성을 위치지웠다. 원주민의 지율성은 단순한
경제적 자기결정을 넘어서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법적, 정치적 자율
성을 포괄한다. 이러한 자율성 개념은 지역적, 종족적 차이를 인정하
고, 권리와 요구, 문화, 욕구에 대한 일률적이며, 보편적 개념에 기반하
지 않고, 복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체계에 그 토대를 둔다. 이러한
자율성 개념은 모든 지역의 인민들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적 측면
혁명적 변화란 "상이한 방법, 상이한 전선, 상이하고 다양한 수준의 위
임과 참여를 통합시키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그것은 더 이상 고유명
사격의 바로 그(THE) 조직, 그 방법, 그 지도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
다."[Don Durito, 1995년 6월 11일]
개혁과 혁명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 각각의 시기에 대중운동은 자
본가들의 착취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투쟁해 왔다. 1930년대에 북미
와 유럽의 노동자들은 자의적 경영과 주기적으로 노동자를 황폐화시키
는 실업문제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와
점진적인 임금인상, 완전고용과 실업보상, 유급휴가, 사회정책과 정치
에 대한 집단적 목소리를 낼 권리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케
인지주의를 쟁취했다. 그러나 노조는 자본과 협력하여 생산성 협정을
체결했고, 이는 급기야 자유시간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를 무시하게 했
다. 또한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자본의 요구를 선호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었지만, 이는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라는 수사로 덧씌어졌다.
혁명은 점차 개혁으로 완화되었다. 빵과 토지, 존엄과 정의를 위해 혁
명전쟁을 치룬 멕시코와 중국 러시아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혁명이란
단지 수사에 불과할 뿐이고 개혁은 급속한 자본축적을 위해서만 구조
화되어 있는 일종의 국가 자본주의에 자신들이 긴박되어 있음을 발견
하게 되었다. 식민지에 반대하는 투쟁은 형태만 변화하고 실제로는 변
화가 없는 신식민지로 귀결되었다. 이것의 함의는 명확하다. 우리는 세
계 전역에서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즉 진정한 혁명을
성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이 갖는 커다란 약점은 우리들이
상호간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를 만들어
내고, 강제하는 자본의 이해와 정책은 훨씬 더 많이 조직되어 있고, 응
집력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매우 강력하고, 거대한 몇몇 기구들에
의해 고안되고, 추진되고 집행되었다. 우리의 분산을 극복하는 것은 신
자유주의 제도와 유사하게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조직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케일의 장대성 위에서 차이를 지니는그
러한 종류의 통일성을 정교화하는 것이다.
조직화의 작업이 특정한 한 종류(AN)의 조직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제조직들은 관료화되고 경직되고 진화의 필요성에 반응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현상은 새롭게 제기되는 노동조합의
"개혁"에 대한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투쟁의 순환을 가속화시키려는 목표와 공동으로 혹은 상호 보완적인
실천에 착수할 수 있는 능력을 다양하게 조직화된 각 지역의 투쟁이나
보다 광범위한 운동과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전 지구적 조직
화의 과정을 우리가 책임짐으로서 사태는 한결 나아질 것이다.
과거에 혁명적 노력은 이데올로기의 선언과 그것의 고수를 통해 "통일
성"을 찾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런 방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 인간들, 사상들, 문화들, 활동양식들은 대단히 다양
하다. 우리들을 동질화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신에 우
리는 자기유지의 생태론을 구성하기 위해 진화하는 다양하고 상호보완
적인 생명체의 그것처럼, 보다 유기적인 통일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과 투쟁의 순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항상 순환해 왔다. 과거에 그것들은 자본
의 순환 자체를 파열시켰다. 다양한 지역들에서의 투쟁은 무역과 투자
를 통해 상호간에 중개되었고, 상호영향을 주고 받았다. 선원들과 이민
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투쟁의 실천을 전파하였고, 때로 다시 가져 가
기도 하였다.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그러한 순환은 가속화되
었다. 기차와 자동차는 뉴스와 조직가들이 더욱 급속히 순환하도록 하
였다. 전화, 대중매체 그리고 팩스는 각각 그들의 협력과 이해의 순환
들을 촉진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컴퓨터 네트워크
는 극적으로 이런 과정들을 가속화시켰고, 그들의 확산은 점차 지구적
인 보완과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제적인 규모에서 쟈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지지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기술의 유용성을
생생하게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욕구를 명확히 하자
지구화가 된다는 것이 혁명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투쟁을 집중, 연계, 확산, 상호촉진시키
며, 자본과 제국주의의 힘을 그들이 개혁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파열시켜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민중들은
그들이 제거하기를 원하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에 대해서 뿐
만 아니라, 그들이 정교화하고 발전시키기를 원하는 관계들에 대해서
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혁명적 격변의 순간은 매우 창조적
이지만 그러한 창조성은 집단적 에네르기에 의해 새롭게 갱신되고 있
는 현존하는 투쟁으로부터 출현한다.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의
하나는 정교화되어지고 있는 대안들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새로
운 종류의 인간관계, 자연과 인간사이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종류의
가족,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 의료보장과 부의 배분상의 새로운
방법 등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요컨대,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에
있어서의 관건은 바로 이같은 다양한 창조의 과정들이 자본의 파괴적
힘, 즉 상품화, 일면적 가치화, 이윤극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칠줄
모르는 노동, 즉 고역의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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