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성 진 (전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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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 상태에서 집권한 현 공동정부의 경제회생 정책이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선택함에 따라 모든 정치·경제적 문제의 해법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주장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자유주의적 교과서에서도 시장의 가격기능만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곤란하다고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공공재(public goods)부문 조차도 예외 없이 시장경쟁과 민영화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자유시장의 원칙을 잘 실천해 나가고 있는 소위 모범(?) 개도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주로 세제적 수단(환경· 에너지세)을 통한 시장의 가격조절기능에 주안점을 두면서 관련 산업의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공급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환경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인양 인식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지닌 한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1. 신자유주의적 접근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경제활동의 기본 틀(framework)을 잡아주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공급비용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순박한 고전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시장에서 적극적인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곧 '정부의 실패'로 연결되어 비효율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단지 예외적으로 시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시장의 실패')에만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까지 국제 정치·경제계에서 절대적인 신봉을 받았던 이러한 철학은 극도로 치열해진 세계시장 경쟁에서 생산비용의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키려는 선진국들의 경제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르면 노동력, 고용 부대비용, 법인세, 환경비용, 에너지가격 등 모든 것들이 산업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싸져야 한다. 80년대 미국과 영국 등을 선두로 진행되던 이러한 신자유주의 물결이 순식간에 국제 정치·경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처럼 인식되게 된 일차적인 배경은 국가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하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국제적 상황에 있다. 그에 따라 시장경쟁의 우수성에 대한 신뢰가 거의 무비판적으로 인정되고, 이의 장점은 전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그리고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유효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 인해 정작 필요한, 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위기에 관한 논의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시장의 가격기능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환경·에너지세의 도입을 강조하면서, 나아가 이러한 세제적 수단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유인책이 환경문제를 원인자부담 원칙에 맞게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에너지세의 필요성에 관한 논거는 환경의 외부효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 이론적 뿌리는 후생경제학자인 피구(Arthur C. Pigou: 1877-1959)의 주장에서 구해지는데, 그에 의하면 사회경제적 자원의 비효율적(비파레토 최적) 배분은 개별 경제주체들 간의 이윤극대화 영업활동으로 인해 다른 경제주체에서 발생하는 외부효과가 자신의 비용과 효용으로 계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환경·에너지세는 바로 이러한 외부비용을 내부화 시킴으로써 대상이 되는 비환경친화적 상품의 공급과 수요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피구세에서는 단지 부(否)의 외부효과를 세금을 통해 부담 지움으로써 교정효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했음에 반해, 오늘날 다듬어진 이론들은 여기에서 얻어지는 세수를 사용 용도와 결부시켜서 환경·에너지세로 인한 교정효과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환경·에너지세의 도입이 자원의 왜곡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또한 녹색세제로의 개혁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덴마크를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 중에는 환경세에 관한 지지부진한 국제적 연대 움직임에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이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러한 세제적 수단은 규제완화 위주의 환경정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주는 효과도 일면 지니고 있다.
2. 신자유주의적 환경정책의 한계
"환경의 외부비용을 어떻게 내부화 시킬 수 있을까?"라는 논의에 온 관심이 집중된 신자유주의적 이론들은 환경·에너지세 등의 가격 조절 수단이나 규제완화 조치로 지구촌이 당면한 환경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져야할 문제, 즉 "시장의 왜곡에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 대신 환경부문에 대한 정부정책의 개입여부 그 자체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환경문제 해결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입장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환경정책의 기본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것보다 수단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에너지정책의 기본적인 목표는 궁극적으로 환경 친화적이고 위험부담이 적으며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서비스산업의 구축에 있으며, 환경정책의 그것은 물질, 토지, 에너지의 소비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수준까지 낮추는 데 있다고 요약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목표는 생활수준의 하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할 만한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복지모델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목표가 경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설명에는 구체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환경정책에 관한 구조적 접근을 시도한 많은 분석들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화폐수량적인 피해가 단순히 국가의 새로운 가격교정에 의해, 즉 세제적 접근에 의한 외부비용의 내부화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그 정책적 결함이 증명된 가격기능에 의존한 이러한 정책 수단은 오히려 지나친 산업화, 과잉생산과 소비패턴, 사적 자본화, 자유방임적 시장경쟁 등과 관련된 환경오염의 구조적 측면들이 외부효과로 처리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의 수립은 그 맹아부터 가로막히게 될 위험이 있다.
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가격의 위기는 시장의 가격기능에 의존하는 세제적 접근이 갖는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73년도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선진국 소비시장에서의 석유가격은 5∼7배로 폭등했지만, 에너지소비량은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렀고 따라서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감소도 소폭에 그쳤다. 이러한 에너지-가격의 탄력성 관계는 지구적 생존의 긴박한 요구인 화석에너지 소비의 감축(2050년까지 50%정도)이 단지 경제적 수단에 의존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에너지소비는 가격의 상승을 통해 어느 정도 감소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량의 변화는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상승에도 대단히 비탄력적이다.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특히 문제시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칫 이러한 방법론이 지속가능성의 확보가 아닌 환경정책의 지속적 무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경제 및 환경정책의 일반적인 틀을 작성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는, 외견상 경제학적으로 잘 증명되어 있는 듯한 이러한 사고는 실제로는 단기적 이윤극대화의 추구라는 경제적 동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환경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며, 단지 환경문제에 대한 정치적 무력을 나타내는 표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3. 구조적 장애요인의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개입 대 경쟁의 확대, 규제 대 규제완화, 계획경제 대 시장경제라는 상호 대립적인 논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에너지공급 산업부문이다. 에너지사용에 의한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40%정도를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이 분야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신자유주의적 물결하에 시장개방과 경쟁의 도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에너지분야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실증적 분석들에 의하면 단지 한정된 부문에서만 가격을 통한 시장조절기능이 그 효력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정한 에너지절약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격인상의 폭은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나타나 있다. 실례로 미국의 산업수요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만일 정부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수요자의 내부 기대수익률을 어느 정도 하락시켜준다면 18%이상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나, 이를 가격상승을 통해 달성하려면 소비자는 현재보다 3배 이상의 높은 에너지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분석결과가 가리키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시장에 존재하는 절약 가능한 에너지 잠재량의 중요성이다. 이론적으로 완전한 시장경제 상태라면 수요자관리 등의 에너지절약정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비자에게 에너지소비의 증가로 인한 비용상승과 절약기술의 이용에 투자되는 비용간의 경제성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발되지 않은 경제성 있는 에너지절약 잠재량은 상당량 존재하고 있는데도, 실제에 있어서 수요자관리 등의 정책 도입은 주저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소비행태는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에너지의 생산-절약간의 대치를 어렵게 만드는 많은 구조적 장애요인들에 기인하는데, 대표적으로 각 행위자들간의 기대수익률 차이를 들 수 있겠다(pay-back gap).
환경·에너지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격기능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구조적 장애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시장경쟁의 도입은 이러한 장애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부문별, 목표별로 각기 고유한 조치들을 서로 묶은 통합된 정책수단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4. 계획된 경쟁
경쟁과 사적 자본에 기초한 시장 배분은 역사적으로 놀랄 만한 경제적 동력과 효율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은 자기조절의 시장기능으로는 범지구적 차원의 질적, 양적 목표나 빈국과 부국간, 그리고 세대간의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시장이란 실상 의도된 기획이다. 만일 시장이 계획되지 못하고 모든 게 스스로에게 맡겨진다면 단기이윤추구에만 몰두되어 지속가능한 사회의 달성은 요원한 일로 남게 될 것이다.
에너지공급산업의 핵심부문인 전력산업의 경우를 통해 이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고자 한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안은 궁극적인 목표를 경쟁의 도입으로 인한 에너지공급가격의 하락에 두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장에 대한 계획된 장치가 결여된 가격경쟁은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시장진입 및 발전-절약간의 대체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에너지소비 증가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상 시장에서 취급되고 있는 일반 재화와는 다른 '공공재'(public goods)이다. 에너지산업의 독점구조와 함께 발생된 문제점들은 에너지의 이러한 공공재적인 특징이 무시된 채 단순한 교환대상의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사업자는 최대의 이윤추구라는 시장경제의 경영논리에 따라 에너지라는 상품의 판매량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고, 그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어 왔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을 민영화나 규제완화 그 자체에 둘게 아니라, 공익 성격의 에너지공급사업이 실제적으로는 자본의 논리에 내맡겨짐으로서 발생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실상 전력산업에는 '보이지 않는 손'도 공공 조정자로서 시장을 보완하는 정부의 진정한 역할도 존재하지 않아 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산업부문만큼 정부의 비호 아래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분야는 드물다. 에너지사업에 대한 왜곡된 과잉 투자비용과 그에 따르는 위험부담은 규제기관에 의해 보장되고 이는 다시 요금을 통해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논의들은 전력산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지닌 비실효성의 원인을 정부의 전력시장에 대한 개입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독점남용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 추구해야하는 규제의 역할이 전기사업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본래 기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에너지사용의 비효율성은 전력산업의 지나친 규제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상품의 이윤추구 영업활동이 정부의 정상적인 감독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왜곡된 구조상의 문제인 것이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잘못된 규제를 바른 규제로 교정하여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접근이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서 갖는 문제점들에 대한 위에서의 분석은, 경쟁의 확대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 소비-절약간의 대체경쟁의 장(場)이 되도록 유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속가능한 시장은 바로 시장의 효율성과 정부의 의도된 조정이 결합된, 치밀하게 계획된 경쟁구조를 통해서만 그 달성이 가능한 것이다. 경쟁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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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환경과공해 제33호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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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 상태에서 집권한 현 공동정부의 경제회생 정책이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선택함에 따라 모든 정치·경제적 문제의 해법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주장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자유주의적 교과서에서도 시장의 가격기능만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곤란하다고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공공재(public goods)부문 조차도 예외 없이 시장경쟁과 민영화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자유시장의 원칙을 잘 실천해 나가고 있는 소위 모범(?) 개도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주로 세제적 수단(환경· 에너지세)을 통한 시장의 가격조절기능에 주안점을 두면서 관련 산업의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공급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환경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인양 인식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지닌 한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1. 신자유주의적 접근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경제활동의 기본 틀(framework)을 잡아주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공급비용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순박한 고전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시장에서 적극적인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곧 '정부의 실패'로 연결되어 비효율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단지 예외적으로 시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시장의 실패')에만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까지 국제 정치·경제계에서 절대적인 신봉을 받았던 이러한 철학은 극도로 치열해진 세계시장 경쟁에서 생산비용의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키려는 선진국들의 경제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르면 노동력, 고용 부대비용, 법인세, 환경비용, 에너지가격 등 모든 것들이 산업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싸져야 한다. 80년대 미국과 영국 등을 선두로 진행되던 이러한 신자유주의 물결이 순식간에 국제 정치·경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처럼 인식되게 된 일차적인 배경은 국가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하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국제적 상황에 있다. 그에 따라 시장경쟁의 우수성에 대한 신뢰가 거의 무비판적으로 인정되고, 이의 장점은 전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그리고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유효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 인해 정작 필요한, 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위기에 관한 논의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시장의 가격기능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환경·에너지세의 도입을 강조하면서, 나아가 이러한 세제적 수단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유인책이 환경문제를 원인자부담 원칙에 맞게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에너지세의 필요성에 관한 논거는 환경의 외부효과에 근거하고 있다. 그 이론적 뿌리는 후생경제학자인 피구(Arthur C. Pigou: 1877-1959)의 주장에서 구해지는데, 그에 의하면 사회경제적 자원의 비효율적(비파레토 최적) 배분은 개별 경제주체들 간의 이윤극대화 영업활동으로 인해 다른 경제주체에서 발생하는 외부효과가 자신의 비용과 효용으로 계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환경·에너지세는 바로 이러한 외부비용을 내부화 시킴으로써 대상이 되는 비환경친화적 상품의 공급과 수요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피구세에서는 단지 부(否)의 외부효과를 세금을 통해 부담 지움으로써 교정효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했음에 반해, 오늘날 다듬어진 이론들은 여기에서 얻어지는 세수를 사용 용도와 결부시켜서 환경·에너지세로 인한 교정효과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환경·에너지세의 도입이 자원의 왜곡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또한 녹색세제로의 개혁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덴마크를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 중에는 환경세에 관한 지지부진한 국제적 연대 움직임에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이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러한 세제적 수단은 규제완화 위주의 환경정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주는 효과도 일면 지니고 있다.
2. 신자유주의적 환경정책의 한계
"환경의 외부비용을 어떻게 내부화 시킬 수 있을까?"라는 논의에 온 관심이 집중된 신자유주의적 이론들은 환경·에너지세 등의 가격 조절 수단이나 규제완화 조치로 지구촌이 당면한 환경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져야할 문제, 즉 "시장의 왜곡에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 대신 환경부문에 대한 정부정책의 개입여부 그 자체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환경문제 해결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입장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환경정책의 기본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것보다 수단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에너지정책의 기본적인 목표는 궁극적으로 환경 친화적이고 위험부담이 적으며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서비스산업의 구축에 있으며, 환경정책의 그것은 물질, 토지, 에너지의 소비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수준까지 낮추는 데 있다고 요약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목표는 생활수준의 하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할 만한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복지모델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목표가 경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설명에는 구체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환경정책에 관한 구조적 접근을 시도한 많은 분석들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화폐수량적인 피해가 단순히 국가의 새로운 가격교정에 의해, 즉 세제적 접근에 의한 외부비용의 내부화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그 정책적 결함이 증명된 가격기능에 의존한 이러한 정책 수단은 오히려 지나친 산업화, 과잉생산과 소비패턴, 사적 자본화, 자유방임적 시장경쟁 등과 관련된 환경오염의 구조적 측면들이 외부효과로 처리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의 수립은 그 맹아부터 가로막히게 될 위험이 있다.
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가격의 위기는 시장의 가격기능에 의존하는 세제적 접근이 갖는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73년도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선진국 소비시장에서의 석유가격은 5∼7배로 폭등했지만, 에너지소비량은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렀고 따라서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감소도 소폭에 그쳤다. 이러한 에너지-가격의 탄력성 관계는 지구적 생존의 긴박한 요구인 화석에너지 소비의 감축(2050년까지 50%정도)이 단지 경제적 수단에 의존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에너지소비는 가격의 상승을 통해 어느 정도 감소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량의 변화는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상승에도 대단히 비탄력적이다.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특히 문제시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칫 이러한 방법론이 지속가능성의 확보가 아닌 환경정책의 지속적 무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경제 및 환경정책의 일반적인 틀을 작성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는, 외견상 경제학적으로 잘 증명되어 있는 듯한 이러한 사고는 실제로는 단기적 이윤극대화의 추구라는 경제적 동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환경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며, 단지 환경문제에 대한 정치적 무력을 나타내는 표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3. 구조적 장애요인의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개입 대 경쟁의 확대, 규제 대 규제완화, 계획경제 대 시장경제라는 상호 대립적인 논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에너지공급 산업부문이다. 에너지사용에 의한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40%정도를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이 분야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신자유주의적 물결하에 시장개방과 경쟁의 도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에너지분야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실증적 분석들에 의하면 단지 한정된 부문에서만 가격을 통한 시장조절기능이 그 효력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정한 에너지절약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격인상의 폭은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나타나 있다. 실례로 미국의 산업수요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만일 정부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수요자의 내부 기대수익률을 어느 정도 하락시켜준다면 18%이상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나, 이를 가격상승을 통해 달성하려면 소비자는 현재보다 3배 이상의 높은 에너지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분석결과가 가리키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시장에 존재하는 절약 가능한 에너지 잠재량의 중요성이다. 이론적으로 완전한 시장경제 상태라면 수요자관리 등의 에너지절약정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비자에게 에너지소비의 증가로 인한 비용상승과 절약기술의 이용에 투자되는 비용간의 경제성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발되지 않은 경제성 있는 에너지절약 잠재량은 상당량 존재하고 있는데도, 실제에 있어서 수요자관리 등의 정책 도입은 주저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소비행태는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에너지의 생산-절약간의 대치를 어렵게 만드는 많은 구조적 장애요인들에 기인하는데, 대표적으로 각 행위자들간의 기대수익률 차이를 들 수 있겠다(pay-back gap).
환경·에너지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격기능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구조적 장애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시장경쟁의 도입은 이러한 장애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부문별, 목표별로 각기 고유한 조치들을 서로 묶은 통합된 정책수단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4. 계획된 경쟁
경쟁과 사적 자본에 기초한 시장 배분은 역사적으로 놀랄 만한 경제적 동력과 효율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은 자기조절의 시장기능으로는 범지구적 차원의 질적, 양적 목표나 빈국과 부국간, 그리고 세대간의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시장이란 실상 의도된 기획이다. 만일 시장이 계획되지 못하고 모든 게 스스로에게 맡겨진다면 단기이윤추구에만 몰두되어 지속가능한 사회의 달성은 요원한 일로 남게 될 것이다.
에너지공급산업의 핵심부문인 전력산업의 경우를 통해 이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고자 한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안은 궁극적인 목표를 경쟁의 도입으로 인한 에너지공급가격의 하락에 두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장에 대한 계획된 장치가 결여된 가격경쟁은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시장진입 및 발전-절약간의 대체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에너지소비 증가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상 시장에서 취급되고 있는 일반 재화와는 다른 '공공재'(public goods)이다. 에너지산업의 독점구조와 함께 발생된 문제점들은 에너지의 이러한 공공재적인 특징이 무시된 채 단순한 교환대상의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사업자는 최대의 이윤추구라는 시장경제의 경영논리에 따라 에너지라는 상품의 판매량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고, 그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어 왔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을 민영화나 규제완화 그 자체에 둘게 아니라, 공익 성격의 에너지공급사업이 실제적으로는 자본의 논리에 내맡겨짐으로서 발생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실상 전력산업에는 '보이지 않는 손'도 공공 조정자로서 시장을 보완하는 정부의 진정한 역할도 존재하지 않아 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산업부문만큼 정부의 비호 아래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분야는 드물다. 에너지사업에 대한 왜곡된 과잉 투자비용과 그에 따르는 위험부담은 규제기관에 의해 보장되고 이는 다시 요금을 통해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논의들은 전력산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지닌 비실효성의 원인을 정부의 전력시장에 대한 개입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독점남용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 추구해야하는 규제의 역할이 전기사업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본래 기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에너지사용의 비효율성은 전력산업의 지나친 규제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상품의 이윤추구 영업활동이 정부의 정상적인 감독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왜곡된 구조상의 문제인 것이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잘못된 규제를 바른 규제로 교정하여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접근이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서 갖는 문제점들에 대한 위에서의 분석은, 경쟁의 확대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 소비-절약간의 대체경쟁의 장(場)이 되도록 유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속가능한 시장은 바로 시장의 효율성과 정부의 의도된 조정이 결합된, 치밀하게 계획된 경쟁구조를 통해서만 그 달성이 가능한 것이다. 경쟁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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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환경과공해 제33호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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