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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인]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요구한 사람

밀의 아버지만큼은 못되어도 꽤나 극성인 아버지를 둔 또 한 명의 유명한 경제학자가 있다. 마샬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아들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양의 공부를 강요하였다.(우리 사회에서는 치맛바람이 거센데 당시의 영국사회에서는 '바짓바람'이 거셌던 것 같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에 있는 아주머니의 집에 가 있는 것이 어린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공부에 찌든 그는 언제나 창백하고 피곤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양초(tallow candle)'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고, 기껏해야 수학과 장기 같은 지적인 취미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엄격하기 짝이 없는 그의 아버지는 이와 같은 취미를 즐기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행원인 그의 아버지는 그가 옥스퍼드대학으로 진학하여 라틴어와 신학을 배운 다음 목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는 옥스퍼드의 장학금 제의를 뿌리치고 부유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케임브리지로 진학하였다. 대학시절의 그는 수학(數學)을 특히 즐겨 공부했으며,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고, 또 하나는 동ㄱㅂ생에게 수학 개인교습을 해주고 얻을 수 있던 다소간의 용돈이었다.

이처럼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그가 막상 책을 쓸 때는 수학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했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다. 그는 모든 수학적 표현을 각주와 부록에 몰아넣고 본문은 거의 다 말과 그림으로 채우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수학이 갖는 의미가 단지 그것이 주는 편리함에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즉 경제적 사고를 빨리, 짧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서 편리하다는 데 수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직관이지 결코 수학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마치 수학을 위한 수학을 하는 것처럼 수학에 매달려 있던 오늘날의 몇몇 경제학자들이 이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마샬은 시장에서의 균형(均衡, euilibrium)현상, 즉 수요와 공급의 힘이 맞아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의 힘이 맞아떨어질 때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이 일정한 수준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게 된다. 만약 수요와 공급 중에서 한쪽의 힘이 더 강하면 시장은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 즉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은 일정한 수준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나가게 된다. 요즈음에는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 사람도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교차점에서 균형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샬의 시대에는 균형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만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한 경제 안에는수많은 시장들이 존재하고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사과가 풍년이라 사과값이 떨어지면 딸기시장이나 귤시장에 파급효과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딸기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석하려면 사과시장이나 귤시장도 고려에 넣고 분석을 진행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할 경우 분석이 너무나 복잡해져 아무런 유용한 결과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보다는 딸기시장만을 따로 떼어서 분석하는 것에서 더 많은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와 같이 다른 시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음을 가정하고 한 시장만을 따로 떼어서 분석하는 방법을 '부분균형분석'이라고 한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이 분석방법을 개발한 것도 마샬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마샬은 50여 년 동안 여든 편이 넘는 글을 써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경제학원리(Principles of Economics)>로 제9판까지 출판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경제학에 끼친 그의 영향은 그보다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경제학자를 길러낸 데서 찾을 수 있다. 케인즈(J. Keynes), 피구(A. Pigou), 로빈슨(J.Rovinson), 로버트슨(D. Robertson)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영국의 경제학 인명사전을 꽉 채우고 있다.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형성된 케임브리지학파는 상당기간 동안 세계 경제학계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전형적인 영국신사다운 부드러운 풍모의 마샬이지만 사회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열정적이 태도를 지녔다. 그는 학생들에게 경제학이 사람들의 경제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였다. 그는 당시 영국사회에 아직도 빈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에만 사로잡혀서는 이 문제뿐 아니라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인식에서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라는 유명한 경제적 기사도의 원칙이 나온 것이다.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지성을 모두 갖춘 경제학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이말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