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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인]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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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 경제학의 할아버지



경제학자들의 족보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미스가 맨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경제학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부론(國富論)>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는 그의 책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거의 모든 경제적 개념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경제적 사고가 이 한 권의 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등장하기 이전의 경제학자, 그러니까 제1세대의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학자 혹은 철학자들이었다. 이들이 경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당시의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경제질서의 도덕성을 정립할 필요가 강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었다. 15세기를 전후하여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권리나 의무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등장과 더불어 물질적 성공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머리를 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제치고 물질적 성공만을 추구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각한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직도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고 있었으며, 이것과 세속적 성공은 양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을 나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해 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하는 냉혹한 현실은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 경제사상가로서 스미스가 갖는 위대함이 있다. 그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체계로 정착된 새로운 경제윤리를 제시했으며,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대로 물질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스미스는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비유했다. 각 개인이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 일해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를 모든 사람의 이득이 되는 결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서 일해야한다는 설교를 늘어놓지 않았다. 아무 죄책감 없이 그저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서 일하기만 하면 괸다고 말했다. 나머지 부분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해결해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푼의 이익이라도 더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네들에게 이 어찌 놀라운 축복이 아닌가!

이제는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 언론인 할 것 없이 모두 스미스의 신봉자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를 감언이설로 뭇 사람을 꼬이는 사교의 교주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나를 믿으면 모든 병고에서 해방되리라'는 말만 믿고 전 재산을 팔아 몽땅 갖다 바쳐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듣기에는 좋아도 거짓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힘을 믿고 각자 제 이익을 챙겨도 된다'는 말은 결코 그따위 감언이설이 아니다.

경제이론이 이 주장의 타당성을 엄밀하게 입증한 바 있으며, 또한 현실에서의 경험도 그 말이 옳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계획경제체제를 버리고 시장의 힘을 활용하는 체제로 전환한 역사적 사실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미스가 말한 '사리(私利, self-interest)의 추구'라는 말을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말은 경제생활을 할 때 남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서 행동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사로운 이득을 추구하되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단서가 붙어 잇다. 예컨대 '사리사욕을 탐한다'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이기적인 태도까지 정당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온갖 수단을 다 써가며 돈을 끌어 모으기에 바쁜 불쌍한 인간까지 스미스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면 스미스는 별로 잘생기지 못한 용모에 가끔 정신없는 행동을 일삼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 그는 잠옷차림으로 정원을 산책하다 생각에 잠겨 무심코 집밖으로 걸어나왔다. 생각에 빠진 그는 정처 없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한참 만에야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은 그가 사는 마을에서 25km나 떨어진 먼 곳이었다니, 정말 정신이 없어도 이만저만 없었던 것이 아니다.(잠이 채 깨지도 않은 사람이 그렇게 먼 거리를 무의식중에 걸어갔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

스미스는 교수직을 맡고 있던 시절 한번도 경제학 강의를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주로 윤리학을 가르쳤는데, 사실 이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독립된 교과목으로서의 경제학이 존재하지 않았고, 경제문제는 철학에서 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독립된 경제학분야가 처음 개설된 것은 1903년에 이르러서였다.)

40세에는 교수직을 잠시 그만두고 어떤 부유한 귀족자제의 가정교사로서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말년에는 세관장으로서 일하기도 하는 등 요즈음의 경제학자와는 달리 비교적 다양한 삶을 경험하였다. (물리학자 뉴턴이 조폐국장으로 일한 것에 비하면 세관장의 일은 그에게 그리 큰 외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비록 멋쟁이는 못되었다 해도, 그런대로 '경제학의 할아버지'로 추앙할 만한 사람이기는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