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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우량은행 합병, 능사 아니다

며칠전 정부가 이르면 이 달 안에, 늦어도 연말까지는 우량은행들간 합병을 통하여 초대형 은행을 출범시키는 방안을 착수하겠다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은행의 초대형화 이야기는 어제오늘 갑작스럽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수년 전부터 있어 온 이야기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 대형화를 주장하는 소위 금융전문가들과 정부의 논리는 거의 달라 진 것이 없습니다. 은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외국 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대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단 몸집이 커야 힘도 세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죠. 다만 최근에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은행통합 방법이 금융지주회사를 통해서 추진된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 저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금융지주회사는 최근에 나온 이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용을 첨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초대형은행은 은행경쟁력 향상의 해법이 아닙니다

은행간 합병을 통해 은행의 크기를 키우려고 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 은행의 규모가 커져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이 하락하는 경우 규모의 경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개의 은행이 있을 때, 각 은행이 특화된 상품을 각각 생산하는 경우의 비용들을 합한 총비용 보다 두 개의 은행을 하나로 합하여 결합생산하는 비용이 낮을 경우 우리는 범위의 경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이것을 시너지 효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는 은행합병을 통한 몸집 늘리기와는 거의 무관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즉 은행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은행의 크기와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규모가 늘어나면 어느 정도까지는 평균비용이 감소하지마는 그 규모 이상을 넘어갔을 때는 오히려 평균비용이 증가하는 규모의 비경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범위의 경제는 두 은행들의 상품이 판이하게 다를 경우에는 가능성이 있지만, 만일 두 은행의 상품이 거의 비슷하다면 범위의 경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범위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업종이 서로 다른 보험이나 은행, 증권회사들 간의 합병에서 가능한 것이죠.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질적인 사업간에 충돌이 발생한다면 오히려 비용이 증대되고 수익이 낮아지는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증적으로는 거의 모든 연구가 은행산업에 있어서 범위의 경제가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규모의 경제에 대해서는 통일된 결과가 없습니다. 어느 연구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있는 것으로 나오고, 어느 연구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를 들어, 15개국의 194개 은행을 실증 분석한 Allen과 Rai (Journal of Banking and Finance, 1996, pp. 665-672)의 결과를 보면, 규모의 경제는 모든 국가에서 소형 은행에서 발생했으며, 대형은행은 규모의 경제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대형은행에서는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경쟁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간의 합병이 오히려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오히려 대형 부실은행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은행 경쟁력 향상은 은행 소유권의 분명함에 있습니다

오히려 은행의 효율성 및 경쟁력 향상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은 은행에 대한 소유권의 분명함에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은행의 경우를 보십시오. 누가 주인인지 분명합니까? 그러다 보니 정부가 실질적인 주인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은행이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1997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고, 현재 금융기관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은행의 건전성과 경쟁성을 위해서 은행의 소유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단박에 그렇게 될 경우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어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재벌개혁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주인이 없는 상태로 놔두고 정부가 마음대로 은행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의 힘 때문입니다. 정부는 그 자체가 시장의 움직임과는 무관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경제의 논리보다는 정치논리와 관료주의로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재벌이라도 시장의 압박을 받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정부보다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부분은 은행의 소유문제를 경제력 집중완화문제와 상충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은행의 소유를 허용하고 금융당국의 사전, 사후적 감시 기능을 철저히 한다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벌의 금융지배는 차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한 BIS 자기자본규제를 통해 능력을 초과한 위험부담을 방지하고 특정기업 및 특정계열기업에 대한 편중여신을 방지하는 여신관리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경영공시를 강화하고 시가회계제도를 철저히 이행토록 함으로써 투자자와 예금자의 감시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문제나 계열사에 대한 불공정대출 문제는 소유제한이라는 진입규제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법에서 다루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재벌의 은행소유에 따른 경제력 집중이 우려가 된다면, 은행산업과 기타 산업을 경쟁적으로 만들면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나 기업이라 하더라도 무한정 많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업을 다 차지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산업이 경쟁적이 되면 재벌들은 전체 수익과 사업의 위험성을 따져서 다각화할 정도의 소수의 기업들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 재벌들이 30개 내지 50개 정도의 많은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가 경쟁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경쟁적인 미국이나 영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분명 그 나라들에도 재벌이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 재벌이 거느리고 있는 기업들은 5-6개 정도입니다. 30개, 50개를 거느리는 것이 그들의 양심에 걸렸기 때문에 그러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의 기업가들과 똑같습니다. 우리의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할 수만 있었다면 그들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 경제환경이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면 해답은 분명해집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하고 그것의 개혁을 원한다면 모든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과 같은 규제들을 없애서 시장을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만들면 됩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해서 그리고 재벌개혁을 위해서 은행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계속 부실화 된 은행을 떠 안고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재벌이 더 비대해진다고들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재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쟁적인 시장입니다. 왜냐구요? 경쟁적인 시장에서 재벌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수십만, 수백만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살아 남을 수 있지만, 통제된 경제에서는 통제권을 쥐고 있는 관료나 정치인 몇 명만 만족시키면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소수의 몇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왜 우리 나라의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한 지 그 이유가 곧 나옵니다. 1997년 경제위기 후 정부가 직접 칼을 들이대며 재벌을 수술하려고 대들었을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조치들을 취했더라면, 부실계열기업들은 자진해서 청산되었을 것이고, 자진해서 빅딜이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의 기업들은 상당히 건실해졌을 것입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 역시 은행경쟁력 향상의 해법이 아닙니다

최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나온 것이 금융지주회사입니다. 금융지주회사는 여러 개의 금융기관을 한 개의 법인으로 결합하기보다는 독립법인으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생기는 이점을 얻으면서, 느슨한 통합에 따르는 각종 시너지 효과를 동시에 얻고자 하는 회사체제입니다. 한마디로 금융지주회사는 단일 소유주가 여러 금융기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소유권을 보장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금융개혁은 진일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금융지주회사법안을 보면 자회사 중 은행이 하나라도 포함된 경우 개인 및 일반법인의 동일인 지분한도를 현행 은행법과 같은 수준인 4%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은행에 대해서 주인이 없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금융지주회사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라는 것이 별반 달라 질 것이 없다는 것이죠. 여전히 정부가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하고 은행과 금융지주회사는 정부의 논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겉모양만 바꾸었을 뿐이지 실질적인 내용은 바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은행의 경쟁력 향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은행의 대형화도 아니고 금융지주회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 빨리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어서 은행이 정치권력과 정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행 대형화의 피상적인 면만을 강조하여 정책당국의 주도하에 추진될 경우 그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거대한 부실은행을 낳을 가능성이 많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은행대형화가 필요하다면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정부는 동일인지분 한도를 폐지하여 은행에 주인을 만들어 주고 그 이해 당사자들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