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 南北韓 경제의 변화
}}
}}{{{{
남북 경제력 격차
갈수록 커지는 추세
_______________________
1인당 GNP 74년부터 남한이 앞서, 93년엔 북한의 8.3배
_______________________
}}
}}
{{}}
남궁 영
{{}}
{{ 신년특집
}}{{ 南北분단 50년 통일로 가는 길
}}{{ NEWSWEEK 1995.1.25
}} {{ NEWSWEEK 1995.1.25
}} 분단후 남북한은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해왔다. 스
탈린주의적 중안집권 경제계획을 수립
한 북한은 자력갱생체제 건설을 목표
로 경제성장과 군사력 강화를 중점적
으로 수행해왔다. 반면에 남한은 시장
경제적 발전전략을 바탕으로 정부가
국민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남북한의 발전전략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한은 사기업
과 개인을 경제 행위의 주체로 해 사
적 이익의 극대화와 시장원리를 통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지
속했다. 그러나 남한이 결코 순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운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국가가 부분적으로 개
입해 사회적 공익의 확대를 위해 필요
한 경우 자유로운 사적 이익 추구를
어느 정도 제한하기도 하고 시장 기능
을 의도적으로 조정하기도 했던 것이
다. 이런 점에서 남한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체제에「계획합리적」(plan-r
ational) 요소를 가미한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사적 이익의 추구와 사유재산권이
원칙적으로 부인되고 있는 북한에서는
경제행위의 목표가 사회적 수요의 충
족과 극대화이며, 이윤이나 임금과 같
은 물질적 동기 대신 이념적 내지 도
덕적 인센티브가 강조되고 있다. 경제
활동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의해 수
행되는 것이 아니라 黨 또는 국가의
중앙집권적 계획과 명령·통제로 이루
어지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완벽한
개입 그 자체가 이념적 가치를 가진
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경제체제는
「계획이념적」(plan-ideological)체제
라고 볼 수 있다.
{{{{ 南北韓 GNP 추이 비교
}}{{
}}{{
}}{{
}}{{
}}{{
}}
}}남북한의{{{{구분
}}{{ GNP(억 달러)
}}{{ 1인당 GNP(달러)
}}{{남한(A)
}}{{북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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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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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4
}}{{ 5.23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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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7
}}{{ 943
}}{{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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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0
}}{{ 16.03
}}{{ 7,466
}}{{ 904
}}{{ 8.26
}}자료 : 한국은행, 「1993년 북한 GNP 추정결과」
}} 경제성장 성과를 보면 남
한은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5개년계
획(1962∼66) 이후 제6차 5개년계획까
지의 기간에 각각 연편
균 7.8%, 9.6%, 9.7%,
5.8%, 8.6%, 10.0%의
고도성장을 달성해왔다.
북한의경우는 1947년 1
개년계획 이래 제3차 7
개년계획(1987∼93)에
이르기까지 총 9차에
걸친 경제계획이 추진
돼왔다. 그 성과를 보면
1961∼65년의 연평균
성장률 9.8%, 1966∼70
년의 기간에는 5.5%,
1971∼75년 10.4%, 1976
∼80년 4.1%, 1981∼85
년 3.7%, 1986∼90년
1.4%, 1991∼93년 5.2%
로 70년대 후반부터 경제 성장률이 급
격히 하락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마
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발전 전략면에서는 보면 남한
은 개방체제하의 국제분업주의를 바탕
으로 공업을 중시하고 수입대체산업에
서 수출산업의 방향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한 반면, 북한은 경제건설의 목적
을 자기완결적인 자립경제를 확립하는
데 두고 중공업 편중정책을 전개해왔
다. 이러한 개발전략의 차이로 남북한
의 산업구조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변
화해왔다.
남한의 공업화는 수입대체나 수출
에 관련된 경공업부문에서 출발해 중
화학공업이 점차 발달하는 과정을 거
치고 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을 시작했던 1962년에는 국내총생산에
서 각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농림어
업 50.2%, 제조업 14.3%, 광업 2.0%,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분야 33.5%로서
제조업의 비중이 매우 낮은 저개발국
가형 산업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경제
개발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남한의 산
업구조는 점차 고도화됐다. 즉 제1차
5개년계획이 완료된 1966년에 국내총
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0%로 증가한 이래 70년 18.1%, 76
년 27.6%, 81년 29.9%, 86년 31.7%로
크게 높아졌다. 한편 89년부터 산업구
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
소하고 서비스분야 비중이 중대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
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서비스분야 비
중이 증대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보여 93년에는농림어업 7.1%, 제조업
27.1%, 서비스업 49.9%를 나타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서비스
등 제3차 산업이 이상 비대화하는 현
상이 생겨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
상의 우려를 낳은면도 있다.
북한의 산업구조도 공업부문의 비
중이 가장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
다. 통일원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전{{{{ 南北韓 경제 비교
}}{{
}}{{
}}{{
}}{{
}}{{
}}
}}
후 복구 3개년계획이 완료된 1956년
이미{{{{ 남한
}}{{
}}{{ 경제
}}{{
}}{{ 북한
}}{{ 822억 달러
}}{{ 수출
}}{{ 10억 달러
}}{{ 838억 달러
}}{{ 수입
}}{{ 16억 달러
}}{{ 440억 달러
}}{{ 외채
}}{{ 103억 달러
}}{{ 474억 달러
}}{{ 예산규모
}}{{ 187억 달러
}}{{ 2,765만Kw
}}{{ 발전용량
}}{{ 714만Kw
}}{{ 7,568만t
}}{{ 원유
도입량
}}{{ 136만t
}}{{ 557만t
}}{{ 곡물
생산량
}}{{ 388만t
}}{{ 205만 대
}}{{ 자동차
생산량
}}{{ 1만 대
}}{{ 3,325만t
}}{{ 강철
생산량
}}{{ 186만t
}}{{ 4,680만t
}}{{ 시멘트
생산량
}}{{ 398만t
}}{{ 411만t
}}{{ 비료
생산량
}}{{ 161만t
}}{{ 60억m
}}{{ 직물
생산량
}}{{ 2억m
}}
}} 농업 26.1%, 공업 40.1%, 기타
33.8%로서 공업이 전체 산업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 이
후 북한의 산업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년 41.3%, 65년 51.5%, 70년
57.3%, 75년 63.0%로 지속적으로 높아
졌으며, 90년대에 56.0%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북한의 산업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 공업구조를
살펴보면 군수산업과 관련 기
계·금속공업, 석유화학 등 중화
학공업의 비중이 계속 높은 상태
를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경공
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
다. 북한의 공업에서 중공업의
비중은 1949년에 이미 51.7%로
경공업의 비중을 상회하고 있으
며 60년 52.2%, 80년 69.0%, 89
년 67.1%로 80년대 이후로는 거
의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산업구조는 농
업보다는 공업을, 경공업보다는
중공업을, 그리고 소비재보다는
생산재 생산을 강조하는 사회주
의적 발전 전략을 수행한 결과라
고 볼 수 있다.(북한의 산업구조
분류가 남한의 분류와는 차이가
있어 공업 비중이 좀더 크게 평
가되는 면도 있다. 즉 북한의 공
업 범주에는 남한의 신국민계정
에 따른 산업분류에서의 광업,
전기·가스, 건설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분단 50년 동안 남북한은
경제규모와 생활수준 등 경제성과의
변화를 반영하는 국민총생산과의 변화
를 반영하는 국민총생산과 1인당
GNP 추이에 있어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일원 통계에 따르면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1953년 13.5억
달러에서 93년에는 3천2백87억 달러로
무려 2백43배가 증가했으며, 북한의
경우 1953년 4.4억 달러에서 93년 2백
5억 달러(추정)로 같은 기간에 약47배
증가했다.
1인당 GNP 역시 남한은 93년 말
현재 7천4백66달러로 같은 기간중 98
배의 증가를 보인데 반해북한은 53년
에 비해 16배 증가한 9백4달러에 머물
렀다. 남한이 국민총생산액에 있어서
북한을 능가했다 하더라도 인구 수에
있어서 북한에 비해 거의 배가 되므로
73년까지는 1인당 GNP에 있어서 북
한보다 뒤지고 있었다. 남한은 74년을
기점으로 1인단 GNP에 있어서도 북
한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그 격차는 더
욱 증대됐다. 북한의 GNP에 대한 남
한 GNP의 비율을 보면 60년 1.3배,
70년 2.0배, 80년 4.5배, 90년 10.3배로
점차 커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93년
에는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북한의
16.0배, 1인당 GNP는 8.3배를 기록했
다. 또 90년대 들어서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남한은 7.1%인 데 반하여
북한의 경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5.2%)을 나타내고 있어, 이러한 추세
가 지속될 경우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
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for NWK)
{{}}
NEWSWEEK 1995.1.25.
?글 3.0으로 편집하였습니다.
}}{{ 南北韓 경제의 변화
}}
}}{{{{
남북 경제력 격차
갈수록 커지는 추세
_______________________
1인당 GNP 74년부터 남한이 앞서, 93년엔 북한의 8.3배
_______________________
}}
}}
{{}}
남궁 영
{{}}
{{ 신년특집
}}{{ 南北분단 50년 통일로 가는 길
}}{{ NEWSWEEK 1995.1.25
}} {{ NEWSWEEK 1995.1.25
}} 분단후 남북한은 각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해왔다. 스
탈린주의적 중안집권 경제계획을 수립
한 북한은 자력갱생체제 건설을 목표
로 경제성장과 군사력 강화를 중점적
으로 수행해왔다. 반면에 남한은 시장
경제적 발전전략을 바탕으로 정부가
국민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남북한의 발전전략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한은 사기업
과 개인을 경제 행위의 주체로 해 사
적 이익의 극대화와 시장원리를 통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지
속했다. 그러나 남한이 결코 순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운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국가가 부분적으로 개
입해 사회적 공익의 확대를 위해 필요
한 경우 자유로운 사적 이익 추구를
어느 정도 제한하기도 하고 시장 기능
을 의도적으로 조정하기도 했던 것이
다. 이런 점에서 남한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체제에「계획합리적」(plan-r
ational) 요소를 가미한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사적 이익의 추구와 사유재산권이
원칙적으로 부인되고 있는 북한에서는
경제행위의 목표가 사회적 수요의 충
족과 극대화이며, 이윤이나 임금과 같
은 물질적 동기 대신 이념적 내지 도
덕적 인센티브가 강조되고 있다. 경제
활동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의해 수
행되는 것이 아니라 黨 또는 국가의
중앙집권적 계획과 명령·통제로 이루
어지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완벽한
개입 그 자체가 이념적 가치를 가진
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경제체제는
「계획이념적」(plan-ideological)체제
라고 볼 수 있다.
{{{{ 南北韓 GNP 추이 비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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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의{{{{구분
}}{{ GNP(억 달러)
}}{{ 1인당 GNP(달러)
}}{{남한(A)
}}{{북한(B)
}}{{ 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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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0
}}{{ 205.0
}}{{ 16.03
}}{{ 7,466
}}{{ 904
}}{{ 8.26
}}자료 : 한국은행, 「1993년 북한 GNP 추정결과」
}} 경제성장 성과를 보면 남
한은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5개년계
획(1962∼66) 이후 제6차 5개년계획까
지의 기간에 각각 연편
균 7.8%, 9.6%, 9.7%,
5.8%, 8.6%, 10.0%의
고도성장을 달성해왔다.
북한의경우는 1947년 1
개년계획 이래 제3차 7
개년계획(1987∼93)에
이르기까지 총 9차에
걸친 경제계획이 추진
돼왔다. 그 성과를 보면
1961∼65년의 연평균
성장률 9.8%, 1966∼70
년의 기간에는 5.5%,
1971∼75년 10.4%, 1976
∼80년 4.1%, 1981∼85
년 3.7%, 1986∼90년
1.4%, 1991∼93년 5.2%
로 70년대 후반부터 경제 성장률이 급
격히 하락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마
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발전 전략면에서는 보면 남한
은 개방체제하의 국제분업주의를 바탕
으로 공업을 중시하고 수입대체산업에
서 수출산업의 방향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한 반면, 북한은 경제건설의 목적
을 자기완결적인 자립경제를 확립하는
데 두고 중공업 편중정책을 전개해왔
다. 이러한 개발전략의 차이로 남북한
의 산업구조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변
화해왔다.
남한의 공업화는 수입대체나 수출
에 관련된 경공업부문에서 출발해 중
화학공업이 점차 발달하는 과정을 거
치고 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을 시작했던 1962년에는 국내총생산에
서 각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농림어
업 50.2%, 제조업 14.3%, 광업 2.0%,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분야 33.5%로서
제조업의 비중이 매우 낮은 저개발국
가형 산업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경제
개발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남한의 산
업구조는 점차 고도화됐다. 즉 제1차
5개년계획이 완료된 1966년에 국내총
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0%로 증가한 이래 70년 18.1%, 76
년 27.6%, 81년 29.9%, 86년 31.7%로
크게 높아졌다. 한편 89년부터 산업구
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
소하고 서비스분야 비중이 중대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
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서비스분야 비
중이 증대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보여 93년에는농림어업 7.1%, 제조업
27.1%, 서비스업 49.9%를 나타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서비스
등 제3차 산업이 이상 비대화하는 현
상이 생겨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
상의 우려를 낳은면도 있다.
북한의 산업구조도 공업부문의 비
중이 가장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
다. 통일원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전{{{{ 南北韓 경제 비교
}}{{
}}{{
}}{{
}}{{
}}{{
}}
}}
후 복구 3개년계획이 완료된 1956년
이미{{{{ 남한
}}{{
}}{{ 경제
}}{{
}}{{ 북한
}}{{ 822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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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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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채
}}{{ 103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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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규모
}}{{ 187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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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4만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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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
}}{{ 398만t
}}{{ 411만t
}}{{ 비료
생산량
}}{{ 161만t
}}{{ 60억m
}}{{ 직물
생산량
}}{{ 2억m
}}
}} 농업 26.1%, 공업 40.1%, 기타
33.8%로서 공업이 전체 산업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 이
후 북한의 산업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년 41.3%, 65년 51.5%, 70년
57.3%, 75년 63.0%로 지속적으로 높아
졌으며, 90년대에 56.0%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북한의 산업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 공업구조를
살펴보면 군수산업과 관련 기
계·금속공업, 석유화학 등 중화
학공업의 비중이 계속 높은 상태
를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경공
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
다. 북한의 공업에서 중공업의
비중은 1949년에 이미 51.7%로
경공업의 비중을 상회하고 있으
며 60년 52.2%, 80년 69.0%, 89
년 67.1%로 80년대 이후로는 거
의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산업구조는 농
업보다는 공업을, 경공업보다는
중공업을, 그리고 소비재보다는
생산재 생산을 강조하는 사회주
의적 발전 전략을 수행한 결과라
고 볼 수 있다.(북한의 산업구조
분류가 남한의 분류와는 차이가
있어 공업 비중이 좀더 크게 평
가되는 면도 있다. 즉 북한의 공
업 범주에는 남한의 신국민계정
에 따른 산업분류에서의 광업,
전기·가스, 건설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분단 50년 동안 남북한은
경제규모와 생활수준 등 경제성과의
변화를 반영하는 국민총생산과의 변화
를 반영하는 국민총생산과 1인당
GNP 추이에 있어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일원 통계에 따르면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1953년 13.5억
달러에서 93년에는 3천2백87억 달러로
무려 2백43배가 증가했으며, 북한의
경우 1953년 4.4억 달러에서 93년 2백
5억 달러(추정)로 같은 기간에 약47배
증가했다.
1인당 GNP 역시 남한은 93년 말
현재 7천4백66달러로 같은 기간중 98
배의 증가를 보인데 반해북한은 53년
에 비해 16배 증가한 9백4달러에 머물
렀다. 남한이 국민총생산액에 있어서
북한을 능가했다 하더라도 인구 수에
있어서 북한에 비해 거의 배가 되므로
73년까지는 1인당 GNP에 있어서 북
한보다 뒤지고 있었다. 남한은 74년을
기점으로 1인단 GNP에 있어서도 북
한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그 격차는 더
욱 증대됐다. 북한의 GNP에 대한 남
한 GNP의 비율을 보면 60년 1.3배,
70년 2.0배, 80년 4.5배, 90년 10.3배로
점차 커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93년
에는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북한의
16.0배, 1인당 GNP는 8.3배를 기록했
다. 또 90년대 들어서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남한은 7.1%인 데 반하여
북한의 경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5.2%)을 나타내고 있어, 이러한 추세
가 지속될 경우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
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for NWK)
{{}}
NEWSWEEK 1995.1.25.
?글 3.0으로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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