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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테마진단]외환자유화 연기는 無理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왜 그토록 열광적으로 지지한 것일까.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이 수수께끼를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라는 말로 풀려고 했다.
오랜 세월 억압에 익숙했던 독일 국민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선사한 자유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고, 그래서 자유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 으로 히틀러라는 카리스마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일 국 민들은 자유를 포기한 때문에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제2단계 외환자 유화를 내년 1월초부터 예정대로 시행한다고 이미 밝힌바 있다.

그러 나 외환자유화의 실시 예정을 놓고 여기저기서 연기하자는 주장이 대 두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일련의 외환자유화 정책이 외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강 행되고 있는 듯한 오해의 목소리도 들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편향된 시 각도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환자유화의 진정한 의미는 가려진 채, 그 부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취해지는 제2단계 외환자유화의 내용의 기본 취지는 국민의 외환사용에 제한을 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자유롭게 해 외여행도 하고 송금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외국금융기관에 예금도 하고 해외투 자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가 자유경제 체 제를 택한 이래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다.

벌써 15년 전에 정부가 국민에게 공약하고도 차일피일 미루어져 왔던 내용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번 외환자유화 조치에 대해 보다 전 향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자유의 확대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필자는 요구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외환자유화 연기론에 충분한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금년 9월말 현재 개인들이 금융기관에 갖고 있는 예금 의 규모는 약 430조원이며, 여기에 채권, 주식, 연금 등을 합한 금융자 산의 총 규모는 768조원에 달한다.

따라서 이 금융자산 가운데서 3%가 해외로 이탈된다고 가정하는 경 우 약23조원, 달러로 환산해서 약 200억불이라는 큰 금액이 한국을 빠 져나간다고 보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내년도부터는 예금부분보장제도와 종합금융과세가 동시에 실시 될 예정이니 새로운 제도의 복합적인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 가 가중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국내자금의 대량유출 우려는 지난 1999년 4월에 기업들 의 외환거래를 완전 자유화한 1단계 때에도 제기됐다가 기우로 판명되 고 말았다.

또 대만이나 일본 등의 사례를 참조하더라도 외환자유화 조치 그 자체 만으로는 국내자금이 해외로 대량 유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일본은 1998년에 개인들의 외환거래를 완전 자유화했지만, 지금까지 해외로 빠져나간 개인 금융자산은 30억불 이하로 전체의 0.0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또 일부에서는 남미의 경우를 상정해서 불안해 하고 있다는 얘기 도 들린다.

그러나 소수 상류층에 부가 집중되어 사회불안이 끊이지 않고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경험하면서 국민의식 마저 미약한 남 미제국과 한국경제를 일대일로 맞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 다.

그렇다고 방심해도 좋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사실상 `국제금융센터 '는 이미 여러 달 전에 정책보고서를 통해 외환자유화의 신중한 실행 을 권고한 바 있다.

정부도 외환자유화에 대비해 다각적인 대책을 세 워놓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급작스런 외화유출에는 일단 대응태세를 취하고 있다.

게 중에는 대외채권 회수의무와 비거주자 원화차입 제한 제도를 유지하는 한편 일정액 이상의 고액송금의 경우 한국은행에 보고하도록 해 놓았 다.

거래자료는 국세청과 관세청에 통보해야 한다.

또 자본거래의 경우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을 경유해야 하는 의무 등 의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급변동에 대비하여 자본거래 허 가제, 대외지급정지, 외환집중제 등의 안전장치(safeguard)를 수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감독감시 기능의 강화는 자유의 확대에 따르는 위험관리 강화 차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들이다.

자유가 동반하는 위험과 책임이 두려워 자유에서 도피한다면 발전이 없다.

물론 경제여건이 변하면 정책의 타이밍도 바뀔 수 있으나 국제사회에 누차 약속한 조치를 연기한다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않다.

사회안정과 건실한 경제기반을 구축해 한국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만들면서 온 국 민이 외환자유화의 이득을 누리도록 하는 일, 이것이 경제적 민주화를 주창해 온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출처 : 매일경제신문 2000-10-31 www.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