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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시평]경제위기 다시 오는가?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악몽같은 아픈 기억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경제위기라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연일 끝을 모르고 폭락하는 증권시장을 보고 국민들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외로 느긋한 여유를 보이고 있어서 국민들은 더욱 불안하다.

경제위기가 다시 올 것인가에 대한 답은 지난 2년반 동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울여온 노력이 성공적이었는가를 평가하는 데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경제개혁정책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면 더 이상의 위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다거나 최소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위기는 다시 올 수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정책은 재벌개혁, 금융개혁 그리고 노동개혁의 세가지이다.

개혁정책에 대한 투자자들과 정부의 평가가 계속해서 서로 엇갈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실패작이었으며, 노동개혁은 정리해고 부분에서만 일부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대부분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과 국민들이 위기 재현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것은 개혁이 실패했다는 투자자들의 평가에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투명성 제고, 책임경영체제 수립, 부채비율의 감소, 핵심역량의 강화, 소액주주권의 강화 등 재벌개혁을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제도의 변화였을 뿐, 재벌기업들의 실질적인 경영의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현대의 형제회장들과 마름경영진들의 활극은 총수체제의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며, 삼성 총수가족들의 끊임없는 재산 빼돌리기는 책임경영의 허구를 보여주었다.

부채비율의 감소는 부채상환이 아닌 계열사들끼리의 유상증자를 통한 제살 깍아먹기로 이루어진 숫자놀음이었다. 핵심역량을 키운다던 재벌들은 이제 벤처기업들까지 넘보고 있다. 총수들의 전횡에도 사외이사들은 말이 없으며, 증권회사들마저도 일제히 같은 날 주주총회를 열어 소액주주들을 깔아 뭉개고 개혁에 도전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해소는 64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를 치던 정부가 이제 와서 100조원을 썼다고 실토를 한다. 그러고도 또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부실을 30조원의 세금으로 해결해주어도 부실은행들이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우는 부도가 난지 1년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조차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투자신탁 부실의 원인이 되어 증권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들도 살아날 가망이 별로 없는데 도대체 채권은행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가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가 빠른 회복기에 접어들자 초기의 작은 성과에 만족함으로써 제도적인 틀만 바꾸고 알맹이를 채우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동안의 개혁은 무늬만 개혁이 된 셈이다.

다시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개혁정책이 실패였다는 시장과 국민들의 냉엄한 판단인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경제위기의 원인이 된 구조적인 문제는 충분한 진단이 내려졌으며, 그에 대한 개혁정책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지속적인 개혁의 실천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는 개혁의 완수에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오늘의 현실을 바로 보고 재벌과 금융산업에 대한 제2의 개혁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경제위기는 다시 온다. 그래서 경제위기가 다시 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대통령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작성자 : 장하성(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