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등장
채취와 수렵 생활로 생존하던 인류는 노동을 통해 의식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종의 보존과 번성을 위해 생산력 향상을 위한 모색으로 집중되었을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을 산출해낼 수 있었고, 이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사유라는 개념이 싹트게 되고, 이로인해 계급은 발생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었던 계급은 그렇지 못한 계급을 지배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지배의 지속을 위해 법과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의 처벌을 위해, 혹은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군대를 만들게 된다. 지배계급의 지배를 피지배계급이 동의하게 하기위해서는 그와같은 강제력과 함께,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지배자를 신성시하거나 종교를 통한 비판의식의 희석, 교육을 통한 도덕성 함양등을 볼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함에 있어, 신분제는 폐지되는데, 이는 기존의 신분질서가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변화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변화를 수용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배계급은 기존의 법과 규칙, 모든 제도를 자본주의가 원활히 발전하는 방향으로 제정하게 되는데, 이는 이전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지배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것이된다.
자본주의 국가의 특징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가 이전의 체제와 다른 점은, 신분제의 폐지로 인한 형식적인 평등사상의 등장이다. 이전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가시적인 불평등이 존재했고, 착취는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전시기는 착취관계가 가시적이고 노골적인 것이었지만, 자본주의에 와서는 착취는 은폐된다. 즉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물질적 토대는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계급이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생산수단으로부터 유리된 임금노도자를 화폐와 노동력 상품의 등가교환을 통해 직접적 생산의 영역에서 착취하는 생산관계이다. 따라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으므로, 계급은 없어지고, 자유로운 경제주체들만 남게된다. 이로써, 모든 개인들은 사적개인으로, 즉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 개인으로 나타나게하며, 그 결과 국가는 사적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공동체로 보여지게 되며, 공정성을 부여받게 된다. 개개인들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관념은, 자본주의 국가가 부르주아의 계급독재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중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게된다. 또한 생산활동이 경제외적 강제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가로 하여금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게급은 그 권력을 구체화한 국가기구를 직접 장악할 필요가 없게된다. 국가는 지배계급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경쟁으로 분열된 자본가계급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해주며,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를 능동적으로 재생산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 - 불황과 호황국면의 주기성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계화의 진전으로 불변자본비율이 높아짐에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띄게되는데, 이것은 공황의 원인이되며, 불황과 호황의 주기적 반복을 하게된다. 따라서, 공항은 자본운동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경제외적 요인에의해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며. 이와같은 불황이 자본주의 경제의 무계획성을 의미하지만, 이것이 곧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자본의 도산, 기존 대자본들간의 관계재편, 대량실업, 국가정책 등으로 경제는 다시 호황국면으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재편성을 통해 기존의 지배계급은 경제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그 세력과 주도권을 더욱 확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인 난국을 거치면서도, 체제는 전복되지 않고, 오히려 그 기반을 재정비한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계속적인 확대재생산을 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급이 또한, 공황이라는 총체적위기가 곧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국면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황은 자본축적과정의 돌연한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위에 생존 기반을 가진 모든 개인과 집단은 타격을 받게되며, 이러한 사회 전체적인 불리한 국면에서 계급사이 및 계급내부에서는 손실의 전가를 둘러싸고 투쟁과 이해대립이 첨예화한다. 이러한 경제영역에서의 투쟁과 이해대립은 정치, 법률, 종교,예술, 철학 위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낳게되며, 사회전체는 큰 혼란에 빠지게된다.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는 과학적인 계급의식, 강력한 계급조직, 투철한 전위세력을 가진 계급이 우수한 전략, 전술로써 그 사회를 전혀 새로운 사회로 혁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공황과 불황의 기간중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배계급의 연대성이 지리멸렬해지는 반면에 피지배계급의 생존조건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에 기존의 생산양식을 타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곧 공황이 야기하는 체제적 위기인 것이다." 즉, '혁명적 정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제적 위기 국면은 지배계급에게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도 있지만, 피지배계급에겐, 체제의 부정을 통한,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같은 적대계급간의 헤게모니 각축전에서, 종종 우위를 차지해왔던 것은 부르주와 지배계급이었으며, 경제적 위기가 극도로 심화된 상태에서도 대중은 극우파시즘을 선택하기도 했다. 어째서 경제적 위기의 순간에도 피지배계급은 책임을 자처하며 묵묵히 적대세력의 이익실현을 위해서 자본의 재편에 순응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 - 피상적 평등
IMF체제하의 현재 한국경제는 언급했던 불황국면이며 그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러한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정세를 이끌고 있는 것은 지배계급인 듯하다. 대량실업과 불안한 시장경제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급변하는 위기상황에서 각자의 경제적 위치를 확고히하거나, 이 기회를 빌미로 그 위치의 급상승 또한 노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착취가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위선적 평등사상 속에서 등가교환의 형태를 띄기 때문에 현상수준에서는 그 면모가 드러나지 않게되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은 상품으로서의 자기자신의 가치를 꾸준히 증가시키게 되며, 학벌,자격증 등의 가치의 담지체들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된다. 즉 자기자신이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인정되고 그것은 시장에서 알맞은 가격으로 교환되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각 개인이 그 가치에 따라 상품시장에서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인정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상품가치의 담지정도에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므로, 각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가치가 적은 개인은 그만큼 성실하거나, 뛰어나지 못한 것으로 판가름난다. 따라서 고수익의 직장과 경제적 성공은 그의 노력의 대가이며, 동시에 자아실현이고, 그렇지 못한 저수익자, 경제적으로 우월하지 않은 계층은 그만큼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판가름 난다. 경제적인 부유함은 결론적으로 선으로 결정나고 궁핍함은 무능력과 악으로 나타나며, 경제적으로 궁핍한 계층은 열심히 선을 향해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경제적인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 세습화된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구두수선공의 성공에대한 대서특필, 대기업 회장의 가난했던 시절의 일화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다는 자명한 사실에대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알맞은 가격으로 계약하고 일한 만큼의 보수를 지불받는 등가교환 사회에서 실업은 개인의 무능력에서 연유하는 것이 되며, 경제가 불황이면 불황일 수록, 호황이면 호황일수록,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시시각각 갖추는 것이 상품으로서의 개인의 전제조건이다. 이와 같이, 인간 개개인의 자아의 실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에서는 사회 모든 영역이 수요와 공급,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안에서만 그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다. 팔릴 수 없는 개인의 능력은 인정되지 않으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 일정시기에 자본이 요구하는 것만을 의미하고, 그렇지 못하면 한 개인은 부도덕한 자로 낙인 찍히는 곳에서 긍정적인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진취적인 가능성들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천박한 기재속에서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불황 국면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은 피지배계급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이전시기보다 수월함을 느낀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피지배계급을 해고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 불황에 속에서 체제의 제모순을 의식하지 못하는 피지배계급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등가교환 사회에서는 착취가 가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정치성을 말소하며, 그들이 항상 '살기 바쁘게'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에게 필요시되는 것은 경제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담지하고 교환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지, 체제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피상적으로 민주적인 모습을 띄게 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정치적인 자유'뒤에 남는 것은 각자의 처절한 아귀다툼이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기재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매체를 통해 민족이나 국가 자체에 대한 강조를 하게된다. 다시 경제재건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선전문구들의 의미는 특정계급의 이익이 전계급의 이익인양 위장되는 모습의 전형이다. 국내 자본에 대한 외국자본의 인수 합병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와 우려를 여론화 시키거나 관광과 문화재에 관련, 민족성에 대한 강조가 공공연히 연출된다. 사장과 임노동자의 관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사장이 일본인이던, 영국인이던,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에 대한 거부는 자신의 자본을 뺏기지 않으려는 국내자본가에게 의미있는 일일 뿐이지, 그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거나 보호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다. 전국민적 국산품 애용운동 또한, 지배-피지배 관계의 은폐이며 국내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마치 다른 모든 피지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의 좋은 예는 대중문화 산업이다. 대중문화는 규격화, 상투성, 보수성, 허위 조작된 소비상품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문화를 생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성을 희석시키며,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목표로만 그들의 지평을 제한한다. 혁명적 경향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게되면 부나, 모험, 정열적사랑, 권력, 선정주의와 같은 거짓충족을 주는 것에 의해 진정되고 또 절단된다. 이러한 대중문화는 대중들이 현재의 한계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조장하며, 주입과 조작을 통해 거짓에 무감각한 허위의식을 만들어내고, 마침내는 이것이 삶의 방식이 되도록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의 방식은 전보다 훨씬 나은 것이고, 바로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삶의 질적 변화를 방해한다. 결국 이미 확립된 언술체계와 행동이라는 내용의 세계를 초월하는 생각이나 희망, 목적들은 무시당하거나 현 수준으로 끌어내려지며, '1차원적'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출현하게 된다. 즉, 특정한 욕구에 대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더욱 근본적인 욕구의 형성을 예방하는것이다. 또한 대중문화의 역할은 어려운 생존의 참을 수 없는 변덕스러움과 그런 생존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행복에대한 욕구 사이의 모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생존에 있어서 해결책은 환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가능성도 정확히 말하자면, 환상이라는 예술적 아름다움의 성격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환상은 진짜로 만족감을 주는 실제 효과를 가져다 주어 기존질서를 유지하게끔 해준다. 또한 이러한 대중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대중문화의 공식이나 관습, 판단들을 아무런 노력없이 제 것인양, 재생산하여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그 존재조차 위협받으며, 바보가 아니면, 지식인일 것이라고 의심받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입장들, 바하의 음악이 백화점에서 울려퍼지고, 서점에 가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책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일종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정당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더 이상 마르크스가 아니며, 바하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현실에대한 초월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그것들의 진실된 영역이었던 '부정하는 힘'과 현재와의 불화라는성격이 박탈된 것이다. 한때는 기존질서와 대립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대립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문화의 '민주화'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동화작용이 역사적으로 미성숙한 것이며, 스스로의 지배력은 유지시키면서 다른 문화는 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것이다. 즉 문화의 민주화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기존 질서를 그대로 고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중문화산업은 일상생활의 고된 일로부터의 탈출을 약속하며, 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끔 사전에 고안되어 있는 것이다. 즐거움은 잊고 싶은 체념을 오히려 촉진시킬 뿐이며, 노동은 대중문화로, 대중문화는 노동으로 돌아가게 한다. 하루종일 억압속에서 복종하다가, TV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채취와 수렵 생활로 생존하던 인류는 노동을 통해 의식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의식의 발전은 종의 보존과 번성을 위해 생산력 향상을 위한 모색으로 집중되었을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을 산출해낼 수 있었고, 이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사유라는 개념이 싹트게 되고, 이로인해 계급은 발생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었던 계급은 그렇지 못한 계급을 지배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지배의 지속을 위해 법과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의 처벌을 위해, 혹은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군대를 만들게 된다. 지배계급의 지배를 피지배계급이 동의하게 하기위해서는 그와같은 강제력과 함께,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지배자를 신성시하거나 종교를 통한 비판의식의 희석, 교육을 통한 도덕성 함양등을 볼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함에 있어, 신분제는 폐지되는데, 이는 기존의 신분질서가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변화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변화를 수용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배계급은 기존의 법과 규칙, 모든 제도를 자본주의가 원활히 발전하는 방향으로 제정하게 되는데, 이는 이전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지배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것이된다.
자본주의 국가의 특징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가 이전의 체제와 다른 점은, 신분제의 폐지로 인한 형식적인 평등사상의 등장이다. 이전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가시적인 불평등이 존재했고, 착취는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전시기는 착취관계가 가시적이고 노골적인 것이었지만, 자본주의에 와서는 착취는 은폐된다. 즉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물질적 토대는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계급이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생산수단으로부터 유리된 임금노도자를 화폐와 노동력 상품의 등가교환을 통해 직접적 생산의 영역에서 착취하는 생산관계이다. 따라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으므로, 계급은 없어지고, 자유로운 경제주체들만 남게된다. 이로써, 모든 개인들은 사적개인으로, 즉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 개인으로 나타나게하며, 그 결과 국가는 사적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공동체로 보여지게 되며, 공정성을 부여받게 된다. 개개인들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관념은, 자본주의 국가가 부르주아의 계급독재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중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게된다. 또한 생산활동이 경제외적 강제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가로 하여금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게급은 그 권력을 구체화한 국가기구를 직접 장악할 필요가 없게된다. 국가는 지배계급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경쟁으로 분열된 자본가계급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해주며,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를 능동적으로 재생산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 - 불황과 호황국면의 주기성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계화의 진전으로 불변자본비율이 높아짐에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띄게되는데, 이것은 공황의 원인이되며, 불황과 호황의 주기적 반복을 하게된다. 따라서, 공항은 자본운동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경제외적 요인에의해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며. 이와같은 불황이 자본주의 경제의 무계획성을 의미하지만, 이것이 곧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자본의 도산, 기존 대자본들간의 관계재편, 대량실업, 국가정책 등으로 경제는 다시 호황국면으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재편성을 통해 기존의 지배계급은 경제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그 세력과 주도권을 더욱 확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인 난국을 거치면서도, 체제는 전복되지 않고, 오히려 그 기반을 재정비한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계속적인 확대재생산을 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급이 또한, 공황이라는 총체적위기가 곧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국면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황은 자본축적과정의 돌연한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위에 생존 기반을 가진 모든 개인과 집단은 타격을 받게되며, 이러한 사회 전체적인 불리한 국면에서 계급사이 및 계급내부에서는 손실의 전가를 둘러싸고 투쟁과 이해대립이 첨예화한다. 이러한 경제영역에서의 투쟁과 이해대립은 정치, 법률, 종교,예술, 철학 위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낳게되며, 사회전체는 큰 혼란에 빠지게된다.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는 과학적인 계급의식, 강력한 계급조직, 투철한 전위세력을 가진 계급이 우수한 전략, 전술로써 그 사회를 전혀 새로운 사회로 혁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공황과 불황의 기간중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배계급의 연대성이 지리멸렬해지는 반면에 피지배계급의 생존조건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에 기존의 생산양식을 타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곧 공황이 야기하는 체제적 위기인 것이다." 즉, '혁명적 정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제적 위기 국면은 지배계급에게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도 있지만, 피지배계급에겐, 체제의 부정을 통한,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같은 적대계급간의 헤게모니 각축전에서, 종종 우위를 차지해왔던 것은 부르주와 지배계급이었으며, 경제적 위기가 극도로 심화된 상태에서도 대중은 극우파시즘을 선택하기도 했다. 어째서 경제적 위기의 순간에도 피지배계급은 책임을 자처하며 묵묵히 적대세력의 이익실현을 위해서 자본의 재편에 순응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 - 피상적 평등
IMF체제하의 현재 한국경제는 언급했던 불황국면이며 그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러한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정세를 이끌고 있는 것은 지배계급인 듯하다. 대량실업과 불안한 시장경제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급변하는 위기상황에서 각자의 경제적 위치를 확고히하거나, 이 기회를 빌미로 그 위치의 급상승 또한 노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착취가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위선적 평등사상 속에서 등가교환의 형태를 띄기 때문에 현상수준에서는 그 면모가 드러나지 않게되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은 상품으로서의 자기자신의 가치를 꾸준히 증가시키게 되며, 학벌,자격증 등의 가치의 담지체들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된다. 즉 자기자신이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인정되고 그것은 시장에서 알맞은 가격으로 교환되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각 개인이 그 가치에 따라 상품시장에서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인정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상품가치의 담지정도에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므로, 각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가치가 적은 개인은 그만큼 성실하거나, 뛰어나지 못한 것으로 판가름난다. 따라서 고수익의 직장과 경제적 성공은 그의 노력의 대가이며, 동시에 자아실현이고, 그렇지 못한 저수익자, 경제적으로 우월하지 않은 계층은 그만큼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판가름 난다. 경제적인 부유함은 결론적으로 선으로 결정나고 궁핍함은 무능력과 악으로 나타나며, 경제적으로 궁핍한 계층은 열심히 선을 향해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경제적인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 세습화된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구두수선공의 성공에대한 대서특필, 대기업 회장의 가난했던 시절의 일화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다는 자명한 사실에대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알맞은 가격으로 계약하고 일한 만큼의 보수를 지불받는 등가교환 사회에서 실업은 개인의 무능력에서 연유하는 것이 되며, 경제가 불황이면 불황일 수록, 호황이면 호황일수록,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시시각각 갖추는 것이 상품으로서의 개인의 전제조건이다. 이와 같이, 인간 개개인의 자아의 실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에서는 사회 모든 영역이 수요와 공급,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안에서만 그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다. 팔릴 수 없는 개인의 능력은 인정되지 않으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 일정시기에 자본이 요구하는 것만을 의미하고, 그렇지 못하면 한 개인은 부도덕한 자로 낙인 찍히는 곳에서 긍정적인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진취적인 가능성들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천박한 기재속에서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불황 국면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은 피지배계급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이전시기보다 수월함을 느낀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피지배계급을 해고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 불황에 속에서 체제의 제모순을 의식하지 못하는 피지배계급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등가교환 사회에서는 착취가 가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정치성을 말소하며, 그들이 항상 '살기 바쁘게'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에게 필요시되는 것은 경제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담지하고 교환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지, 체제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피상적으로 민주적인 모습을 띄게 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정치적인 자유'뒤에 남는 것은 각자의 처절한 아귀다툼이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기재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매체를 통해 민족이나 국가 자체에 대한 강조를 하게된다. 다시 경제재건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선전문구들의 의미는 특정계급의 이익이 전계급의 이익인양 위장되는 모습의 전형이다. 국내 자본에 대한 외국자본의 인수 합병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와 우려를 여론화 시키거나 관광과 문화재에 관련, 민족성에 대한 강조가 공공연히 연출된다. 사장과 임노동자의 관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사장이 일본인이던, 영국인이던,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에 대한 거부는 자신의 자본을 뺏기지 않으려는 국내자본가에게 의미있는 일일 뿐이지, 그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거나 보호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다. 전국민적 국산품 애용운동 또한, 지배-피지배 관계의 은폐이며 국내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마치 다른 모든 피지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 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의 좋은 예는 대중문화 산업이다. 대중문화는 규격화, 상투성, 보수성, 허위 조작된 소비상품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문화를 생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성을 희석시키며,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목표로만 그들의 지평을 제한한다. 혁명적 경향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게되면 부나, 모험, 정열적사랑, 권력, 선정주의와 같은 거짓충족을 주는 것에 의해 진정되고 또 절단된다. 이러한 대중문화는 대중들이 현재의 한계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조장하며, 주입과 조작을 통해 거짓에 무감각한 허위의식을 만들어내고, 마침내는 이것이 삶의 방식이 되도록하는 것이다. 지금의 삶의 방식은 전보다 훨씬 나은 것이고, 바로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삶의 질적 변화를 방해한다. 결국 이미 확립된 언술체계와 행동이라는 내용의 세계를 초월하는 생각이나 희망, 목적들은 무시당하거나 현 수준으로 끌어내려지며, '1차원적'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출현하게 된다. 즉, 특정한 욕구에 대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더욱 근본적인 욕구의 형성을 예방하는것이다. 또한 대중문화의 역할은 어려운 생존의 참을 수 없는 변덕스러움과 그런 생존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행복에대한 욕구 사이의 모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생존에 있어서 해결책은 환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가능성도 정확히 말하자면, 환상이라는 예술적 아름다움의 성격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환상은 진짜로 만족감을 주는 실제 효과를 가져다 주어 기존질서를 유지하게끔 해준다. 또한 이러한 대중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대중문화의 공식이나 관습, 판단들을 아무런 노력없이 제 것인양, 재생산하여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그 존재조차 위협받으며, 바보가 아니면, 지식인일 것이라고 의심받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입장들, 바하의 음악이 백화점에서 울려퍼지고, 서점에 가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책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일종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정당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더 이상 마르크스가 아니며, 바하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현실에대한 초월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그것들의 진실된 영역이었던 '부정하는 힘'과 현재와의 불화라는성격이 박탈된 것이다. 한때는 기존질서와 대립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대립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문화의 '민주화'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동화작용이 역사적으로 미성숙한 것이며, 스스로의 지배력은 유지시키면서 다른 문화는 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것이다. 즉 문화의 민주화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기존 질서를 그대로 고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중문화산업은 일상생활의 고된 일로부터의 탈출을 약속하며, 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끔 사전에 고안되어 있는 것이다. 즐거움은 잊고 싶은 체념을 오히려 촉진시킬 뿐이며, 노동은 대중문화로, 대중문화는 노동으로 돌아가게 한다. 하루종일 억압속에서 복종하다가, TV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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